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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책읽는사회문화재단 &gt; 웹진(이 한 대목)</title>
		<link>http://www.bookreader.or.kr/test/webzine.php?mid=19</link> 
		<dc:language>ko</dc:language>
		<item>
			<title>되찾은 아이-『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中에서</title>
			<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tr height="27"><td><b>책사회</b></td><td align="right"><b>2010-08-05 15:01:07</b></td></tr></table><br /><br /><P class=바탕글><FONT size=2>&nbsp;&nbsp; 이틀 동안 그녀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산토도밍고 사람들은 뭐든 소문내길 좋아했다. 소녀가 살아남았다는 걸, 하고많은 곳 중에 하필 아수아 외곽에서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걸 라 잉카는 믿고 싶지 않았다. 이틀 밤 내내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마마후이나의 힘을 빌려야 했던 그녀는 죽은 남편의 꿈을 꾼 뒤에, 무엇보다도 정신을 가다듬은 뒤에 이웃이자 빵 반죽의 일인자(그는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라 잉카네 빵집에서 빵 반죽을 해주었다)인 카를로스 모야에게 차를 태워달라고 부탁해서 여자아이가 살고 있다는 곳으로 갔다. 그 아이가 내 사촌의 딸이라면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어. 라 잉카의 말이었다. 스물네 시간 뒤, 라 잉카는 믿을 수 없을 만치 키가 크고 반죽음 상태였던 벨리시아를 데리고 왔다. 라 잉카의 마음에는 아이가 자란 동네와 그 주민들에 대해 평생 사라지지 않을 시퍼런 칼날이 세워졌다. 이 야만인들은 어린것을 기름에 지졌을 뿐만 아니라 벌로 닭장에 가둬놓기까지 했다. 그것도 밤에! 처음에 그들은 아이를 데려오지 않으려 했다. 당신 친척일 리가 없어요. 깜둥이라니까. 하지만 라 잉카는 고집을 부리며 특유의 엄중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화상 때문에 몸을 굽힐 수도 없던 소녀가 닭장에서 나오자, 라 잉카는 아이에게서 자신을 쳐다보는 아벨라르와 소코로의 모습을 보았다. 검은 피부 따윈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아이였다. 셋째이자 막내딸. 잃어버린 줄 알았으나 되찾은 그 아이였다. </FONT></P>
<P class=바탕글><FONT size=2></FONT>
<P class=바탕글><FONT size=2>&nbsp;&nbsp; 내가 네 진짜 가족이다, 라 잉카가 힘주어 말했다. 널 구하려고 왔어.</FONT></P>
<P class=바탕글><FONT size=2></FONT>
<P class=바탕글><FONT size=2>&nbsp;&nbsp; 그렇게, 눈 깜짝할 새에, 귓속말 하나로 둘의 삶은 돌이킬 수 없이 바뀌었다. 라 잉카는 남편이 가끔 낮잠을 자거나 칼로 뭔가를 깎아 만들던 작은 방에 벨리를 묶게 했다. 아이에게 정체성을 부여할 서류도 작성해서 제출했고, 의사도 불렀다. 화상은 믿을 수 없으리만치 심각했다. (히트 포인트 최고 110, 최소 3도 화상이었다.) 괴물 손바닥처럼 등 전체에 뻗은 그 끔찍한 화사 자국은 뒷목에서 시작해 맨 아래 척추 부분까지 닿아 있었다. 포탄 구멍인 듯이. 히바쿠샤의 전흔인 듯이. 아이가 진짜 옷을 다시 입을 수 있게 되자마자 라 잉카는 아이에게 단정한 옷을 입힌 뒤 집 앞에서 처음으로 진짜 사진을 찍게 했다. </FONT></P>
<P class=바탕글><FONT size=2></FONT>
<P class=바탕글><FONT size=2>&nbsp;&nbsp; 거기 그녀가 있다. 이파티아 벨리시아 카브랄, 셋째이자 막내 딸. 뭐든 의심하고, 화가 나 있고, 인상을 찡그리고, 말이 없는, 상처 입고 굶주린 시골 소녀, 그러나 표정과 자세에는 굵은 글씨체로 '반항'이라고 쓰여 있는. 피부는 검었지만 분명 그 집안의 딸이었다. 그 점은 확실했다. 벌써 재클린이 가장 컸을 때보다 키가 더 컸고, 눈 색깔은 전혀 아는 바 없는 제 아버지의 눈과 꼭 같았다.</FONT></P>
<P class=바탕글><FONT size=2></FONT>&nbsp;</P>
<P class=바탕글><FONT size=2></FONT>&nbsp;</P>
<P class=바탕글><FONT size=2>- 주노 디아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권상미 역. 문학동네, 2009. 300-302쪽.</FONT></P>]]></description>
			<link>http://www.bookreader.or.kr/test/webzine.php?mid=19&amp;r=view&amp;uid=4175</link>
			<dc:creator>책사회</dc:creator>
			<category><![CDATA[이 한 대목]]></category>
						<dc:date>2010-08-05 15:01:07</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나영이와 공부하기 - 『가출 소녀와의 동거』中에서</title>
			<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tr height="27"><td><b>책사회</b></td><td align="right"><b>2010-07-09 10:53:57</b></td></tr></table><br /><br /><P><FONT size=2>&nbsp;&nbsp; 하지만 오늘날의 환경에서 나영이 본인이 의지를 갖는다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늘 권력과 부를 바래왔지만 요즘은 돈 쪽이 더 강한 목적이 되었다. 자본의 시대에는 계산기를 두드려 비용 대비 산출을 따진다. 경제학의 입장에서 비교해보라. 아무 성과가 없을 리스크를 감수하고 나영이에게 각종 명목의 투자를 할 때 얻는 효용과, 그 돈으로 지금 당장 옷이나 장신구를 사줄 때의 효용을. 투자자와 나영이 모두 전자를 택하기 힘들다. 힘들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미래를 기약하는 사람보다, 무슨 짓을 해서든 당장의 지출이 많은 사람을 이 사회는 우대하고 있지 않던가. 가난한 학자보다는 돈 많은 조폭이 이 사회의 주류에 좀더 가깝지 않던가. 그러니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나중에 얻을 더 큰 효용을 감안해서 미래를 대비할 이유를 나영이가 어떻게 찾겠는가. 그리고 누가 거기에 투자를 하겠는가. </FONT></P>
<P><FONT size=2>&nbsp;&nbsp; 내가 줄곧 나영이의 공부를 염두에 두었던 이유는, 검정고시조차 치르지 않았을 때 받게 될 사회의 편견이나 불이익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자기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지기 위해선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직접 경험을 통해서도 배울 순 있다. 그러나 그 뼈저린 모멸감보다는 미리 배우는 편이 훨씬 낫다. 하지만 의지가 생기지 않으면 배울수 없고 배우지 못하면 의지가 생기기 어렵다. 입구가 없다. 그 안타까움이 내가 나영이를 계속 붙잡고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겠다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오늘날의 초중등 교육은 근대의 산물이므로 그걸 극복하고 포스트모던한 현대에 적응하기 위해선 우선 근대적 사유의 틀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실제 인간의 삶 앞에선, 이런 관념적 논의는 나를 아무데도 데려다 주지 못했다. </FONT></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 먹물. 『가출 소녀와의 동거』. 책마루, 2010. 156-7.</P></FONT>]]></description>
			<link>http://www.bookreader.or.kr/test/webzine.php?mid=19&amp;r=view&amp;uid=4103</link>
			<dc:creator>책사회</dc:creator>
			<category><![CDATA[이 한 대목]]></category>
						<dc:date>2010-07-09 10:53:57</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대통령 - 『페리스코프』中에서</title>
			<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tr height="27"><td><b>책사회</b></td><td align="right"><b>2010-07-02 10:34:30</b></td></tr></table><br /><br /><P><FONT size=2>&nbsp;&nbsp;&nbsp; 1928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허버트 후버는 미국의 장래를 한껏 밝게 내다보고 있었다. 그는 유세에서 "지금 미국은 역사상 어느 나라보다도 빈곤의 완전한 정복을 가까이 바라보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대공황은 그의 취임 7개월 수에 터졌다. </FONT></P>
<P><FONT size=2>&nbsp;&nbsp;&nbsp; 후버의 재임 중 미국인의 총소득은 절반 이하로 떨어지고 수출입은 3분의 1 이하가 됐다. 공식적인 실업률은 25%를 기록했지만 실질 실업률은 40% 이상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후버는 낙관론을 버리지 않아야 위기를 넘길 수 있다고 믿었고, 근본적인 실패를 고집스럽게 부인함으로써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기만 했다. </FONT></P>
<P><FONT size=2>&nbsp;&nbsp;&nbsp; 후버의 고답적인 태도를 대표적으로 보여준 것이 '연금 부대' 격퇴다. 1932년 대통령선거전을 앞둔 여름, 제1차 세계대전 참전 병사 2만여 명이 워싱턴에 몰려들었다. 1945년부터 지급받기로 예정돼 있는 연금을 앞당겨 달라고 청원하며 대로상에 캠프를 친 그들은 연금 부대Bonus Army라 했다. 후버는 군대를 동원해 이들을 쫓아냈는데, 과잉 작전으로 적지 않은 사상자를 냈다고 한다.&nbsp;</FONT></P>
<P><FONT size=2>&nbsp;&nbsp;&nbsp; 얼마 후 새 대통령 루스벨트에게 연금 부대가 다시 찾아왔을 때 루스벨트는 부인 엘리너를 그 캠프로 보냈다. 엘리너는 시위자들에게 커피를 권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노래를 부르며 그들의&nbsp;마음을 달래줬다. "후버는 기병대를 보내줬고 루스벨트는 아내를 보내줬다"는 것이 두 대통령의 차이로 국민들의 마음에 새겨졌다.&nbsp;</FONT></P>
<P><FONT size=2>&nbsp;&nbsp;&nbsp; 대공황을 이겨낸 루스벨트의 '뉴딜'이 후버의 정책과 달랐던 것은 빈민 구제에 역점을 두고 근본적인 제도개혁을 꾀한 점이다. 빈민구제를 좌경화로 여기고 제도 개혁을 체제 전복으로 생각했던 후버와 달리 위기의 심도를 투철하게 인식한 것이다. 라디오방송 &lt;노변정담Fireside Chat&gt;으로 국민에게 다가가려 애쓴 것도 같은 인식에서였다.&nbsp;</FONT></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 김기협. 『페리스코프』. 서해문집, 2010.&nbsp;130-1쪽.&nbsp;</P></FONT>]]></description>
			<link>http://www.bookreader.or.kr/test/webzine.php?mid=19&amp;r=view&amp;uid=4097</link>
			<dc:creator>책사회</dc:creator>
			<category><![CDATA[이 한 대목]]></category>
						<dc:date>2010-07-02 10:34:3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나르마다 강개발 - 『9월이여, 오라』中에서</title>
			<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tr height="27"><td><b>책사회</b></td><td align="right"><b>2010-06-10 12:05:18</b></td></tr></table><br /><br /><p><font size="2"></font>&nbsp;</p>
<p><font color="#8f0197" size="4"><em><strong>"'나르마다 강 유역 개발 계획'은&nbsp; 세계에서 가장 야심적인 </strong></em></font></p>
<p><font color="#8f0197" size="4"><em><strong>강 개발계획으로 여겨지고 있다."</strong></em></font></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나는 나르마다 강 유역에서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나는 나르마다에서 여러 해&nbsp;동안 활동해 온 사람들 몇몇을 만났다. 내가 알게 된 것은 나를 변화시키고, 매혹시켰다. 그것은 한 정부가 민주주의라는 그럴듯한 가면을 쓰고 국가이익이라는 이름 밑에서 어떻게 교묘한 방식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망가뜨리고 있는가를 가차없이 폭로하고 있었다. 인도는 물론 티베트가 아니며, 아프카니스탄도, 동티모르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nbsp;&nbsp;&nbsp;</font></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1999년 3월 나는 나르마다 강 계곡으로 갔다. 나는 나르마다 강 계곡이 한사람의 작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돌아왔다. 단순히 작가가 아니라 소설가가 필요하였다.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소설의 소재로서는 지나치게 품격이 없는 것으로 보여도, 소설가다운 솜씨와 열정으로 여러 분리된 부분들을 통합하여 일관된 이야기로 만들어낼 수 있는 소설가 말이다. 나는 나르마다 강의 이야기는 바로 현대 인도의 이야기라고 믿는다. </font></p>
<p>&nbsp;</p>
<p><font size="2"><font color="#ff483f">- 아룬다티 로이.&nbsp;『9월이여, 오라』. 박혜영 역. 녹색평론, 2005. 6~7쪽.</font>&nbsp;</font></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font color="#307f00"></font></font>&nbsp;</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font>&nbsp;</p>
<p>&nbsp;</p>]]></description>
			<link>http://www.bookreader.or.kr/test/webzine.php?mid=19&amp;r=view&amp;uid=4081</link>
			<dc:creator>책사회</dc:creator>
			<category><![CDATA[이 한 대목]]></category>
						<dc:date>2010-06-10 12:05:18</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안티라망」中에서</title>
			<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tr height="27"><td><b>책사회</b></td><td align="right"><b>2010-06-03 11:51:32</b></td></tr></table><br /><br /><P><FONT size=2>&nbsp;&nbsp; 나는 모를 일이다. 왜 세상은 한 사람이 웃으면 다른 사람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나와야 하는지를. 남자는 나를 휠체어에 태운 채 방문을 열고 나갔다. 문이 열리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가구와 살림살이가 시커멓게 그을린 채 보였다. 그리고 거실 한 벽에는 타다 만 가족사진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남자는 사진을 가리키며 자신이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사진 위에는 금실로 수를 놓은 액자가 있었는데 유리는 깨져 있었고, 뒤의 글자도 불에 타서 '이 집에 들어오는 모든 이'까지 새겨 있었다. 불에 탄 흔적 말고는 모든 것이 똑같았다. 그때와 다른 것은 다만 피냄새만 없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많이 본 듯한 집 안을 보면서 태어났을 나의 아기가 보고 싶었다. </FONT></P>
<P><FONT size=2>&nbsp;&nbsp; 나는 순간 눈을 감고 기도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무엇을? 또 누구에게?</FONT></P>
<P><FONT size=2>&nbsp;&nbsp; 그는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만 할 줄 알고 아무런 움직임도 할 수 없는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나를 죽일 것인가? 아니면 여태껏 내 똥과 오줌을 치우며 나를 보살펴준 것처럼 돌봐줄 것인가? 왜 세상은 내 생각과 의지와는 아무 상관 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 걸까? 내가 한 일이라곤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선택이었는데, 왜 나는 다시 이 곳에 있어야 하는 걸까? 내가 남자에게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말하면 남자는 나를 용서해줄 것인가? 삶이란 게 고작 죽음을 향해 질주하는 것이라고는 하나, 그리고 이성적인 최선의 선택이란 게 결국 이기적으로 합리화하는 것이라고는 하나 어째서 죽음은 삶을 의식하지 못하고 삶의 논리만 이 세상에 가득한 것인가.</FONT></P>
<P><FONT size=2>&nbsp;&nbsp; 나는 두 눈을 꼭 감고 기도하듯이 중얼거렸다. 신은 있으라. 신은 있으라. 제발 신은 있으라. 부디, 부디 신은 있으라. </FONT></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FONT>&nbsp;</P>
<P>&nbsp;</P>
<P align=left><FONT size=2>- 박성원. 「안티라망」. 김훈 외 9인. 『2005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랜덤하우스중앙, 2005. 186-7쪽.</FONT></P>]]></description>
			<link>http://www.bookreader.or.kr/test/webzine.php?mid=19&amp;r=view&amp;uid=4070</link>
			<dc:creator>책사회</dc:creator>
			<category><![CDATA[이 한 대목]]></category>
						<dc:date>2010-06-03 11:51:32</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현실의 환상 - 「전철수」中에서</title>
			<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tr height="27"><td><b>책사회</b></td><td align="right"><b>2010-05-27 12:17:46</b></td></tr></table><br /><br /><P><FONT size=2><FONT size=2>&nbsp;&nbsp; "그렇다면 각별히 조심하시오. 분명히 말하지만, 당신은 여행중에 숱한 유혹을 받게 될 겁니다. 차창으로 밖을 내다보면, 당신은 신기루의 함정에 노출될 수 있어요. 차창에는 승객들의 마음에 온갖 환영을 만들어내는 교묘한 장치가 설치되어 있지요. 꼭 마음이 약한 사람만 그런 환영에 속아넘어가는 건 아닙니다. 기관차에서 조작하는 어떤 장치들은 소리와 움직임 때문에 열차가 달리고 있다고 믿게 만듭니다. 하지만 승객들이 창유리로 매혹적인 풍경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동안 기차는 몇주씩 꼼짝 않고 멈춰서 있지요."</FONT></FONT></P>
<P><FONT size=2><FONT size=2>&nbsp;&nbsp; "도대체 왜 그러는 겁니까?"</FONT></FONT></P>
<P><FONT size=2><FONT size=2>&nbsp;&nbsp; "철도회사는 승객들의 불안과 이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최대한 줄여주려는 건전한 의도로 이 모든 것을 행하지요. 회사의 바람은 언젠가 승객들이 모든 것을 운명에, 무소불위의 회사의 손에 맡기고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에서 오는지 더이상 상관하지 않게 되는 거라오."</FONT></FONT></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 후안 호세 아레올라. 「전철수」. 후안 룰포 외.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 김현균 편역. 창비, 2010. 231-2쪽.</FONT></P>]]></description>
			<link>http://www.bookreader.or.kr/test/webzine.php?mid=19&amp;r=view&amp;uid=4063</link>
			<dc:creator>책사회</dc:creator>
			<category><![CDATA[이 한 대목]]></category>
						<dc:date>2010-05-27 12:17:46</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인문학 - 『희망의 인문학』中에서</title>
			<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tr height="27"><td><b>책사회</b></td><td align="right"><b>2010-05-20 11:33:10</b></td></tr></table><br /><br /><FONT size=2>&nbsp;그러나 가난의 대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일지라도 부자들과 비교해서 인문학을 공부할 능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엘리트주의자들의 그러한 '선험적' 주장은 사실 단 한 번도 제대로 검증받지 않은 채 사회적으로 수용되었던 것이다. 엘리트주의자들의 '충고' 때문에 빈민들은 인문학을 공부할 기회를 차단당했고, 그 결과 정치적 삶에 이를 수 있는 하나의 효과적인 길을 봉쇄당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를 살펴보면 참으로 공정하지 못하기가 이를 데 없는 견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노예제도와 그것에 기초한 조직적 억압 상황에서 작동했던 무력의 포위망 속에서도 미국 흑인들은 인문학을 공부할 방법을 찾아냈고, 정치적 삶을 발전시켰으며, 시민권 회복을 위한 숭고한 운동을 통해서 자신들을 속박했던 것들을 타파해나갔다. 인문학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자들보다 더 인간다울 수 있었던 것이다. </FONT>
<P>&nbsp;</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 얼 쇼리스. 『희망의 인문학』. 고병현 외 2인 역. 이매진, 2009. 199쪽.</FONT></P>]]></description>
			<link>http://www.bookreader.or.kr/test/webzine.php?mid=19&amp;r=view&amp;uid=4055</link>
			<dc:creator>책사회</dc:creator>
			<category><![CDATA[이 한 대목]]></category>
						<dc:date>2010-05-20 11:33:1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누가 그를 기억하랴 - 이동하</title>
			<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tr height="27"><td><b>책사회</b></td><td align="right"><b>2010-05-10 14:24:27</b></td></tr></table><br /><br /><FONT size=2>진작 영혼이 떠나버린 육체는 비록 잡동사니들 속에서 끄집어 낸 한 뭉텅이 걸레뭉치 같기는 할망정 그래도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팔다리는 그나마 온전하였다. 꼭대기 층에 살았던 덕분인지도 모른다. 말할 것도 없이, 아래층에 있었던 사람들은 더 끔찍한 상태였다. 구조대원들이 얽히고설킨 건축자재들 사이에서 그의 시신을 끌어내어 불볕더위 속에 잠시 방치해둔 사이, 구경꾼들은 그 불행한 사내의 얼굴을 비교적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몹시 초라하고 거의 불결하기까지 한 모습이었지만 그다지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엘리베이터나 현관 앞에서 또는 마을 슈퍼나 버스 정류소 같은 데서 일쑤 마주치곤 했던 그런 얼굴들 중의 하나임이 분명하였다. 여자는 울부짖지 않았다. 그렇다고 담담한 태도도 물론 아니었다. 단지, 사자에 대한 한없는 연민을 담은 손길로 하염없이 사내의 얼굴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고는 하였다.</FONT> 
<P>&nbsp;</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FONT>&nbsp;</P>
<P align=left><FONT size=2>- 이동하. 「누가 그를 기억하랴 」.『우렁각시는 알까?』. 현대문학, 2007. 176-7쪽.</FONT></P>]]></description>
			<link>http://www.bookreader.or.kr/test/webzine.php?mid=19&amp;r=view&amp;uid=4049</link>
			<dc:creator>책사회</dc:creator>
			<category><![CDATA[이 한 대목]]></category>
						<dc:date>2010-05-10 14:24:27</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中에서</title>
			<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tr height="27"><td><b>책사회</b></td><td align="right"><b>2010-05-06 14:00:53</b></td></tr></table><br /><br /><P><FONT size=2>&nbsp;&nbsp;&nbsp; 나는 차갑지만 편안한 철로 위에 누워, 수용소로 돌아갈 일을 생각했다. 매트리스가 없는 침대에서, 오늘밤 가스실로 가지 않게 된 동료들과 함께 잠자리에 드는 광경을 떠올렸다. 갑자기 수용소가 평화로운 안식처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이 끊임없이 죽어가고 있는 가운데, 또 어떤 사람들은, 어쨌든 아직도 멀쩡하게 살아 잇고, 먹을 게 있고, 일할 힘이 남아 있고, 조국이 있고, 집이 있고, 애인이 있다······</FONT></P>
<P><FONT size=2>&nbsp;&nbsp;&nbsp; 하역장의 불빛이 괴이하게 깜빡인다. 제정신이 아닌, 머릿속이 몽롱하고 혼란에 빠진 사람들의 물결이 끝없이 흐르고 있다. 저들은 이제 수용소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고 믿으며, 생존을 위한 힘겨운 사투를 위해 마음을 가다듬는다. 저들은 잠시 후면 자신들이 죽을 것이고, 옷의 안감이나 주름에, 구두 굽에, 몸 안의 후미진 곳에 그렇게도 신중하게 감춰 가져온 금붙이와 돈, 다이아몬드가 이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이 그들의 몸 구석구석 깊숙한 곳까지 다 조사할 것이고, 혓바닥 아래 숨겨놓은 금붙이까지, 자궁과 결장 속에 있는 다이아몬드 조각까지 모두 다 찾아낼 것이다. 금니도 떼어갈 것이다. 그것들은 단단히 밀봉된 상자에 담겨 베를린으로 보내지리라. </FONT></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 타데우쉬 보로프스키.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타데우쉬 보로프스키 외.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정병권 · 최성은 편역. 창비, 2010. 443-4쪽.</P></FONT>]]></description>
			<link>http://www.bookreader.or.kr/test/webzine.php?mid=19&amp;r=view&amp;uid=4046</link>
			<dc:creator>책사회</dc:creator>
			<category><![CDATA[이 한 대목]]></category>
						<dc:date>2010-05-06 14:00:53</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생명력 - 『1984』中에서</title>
			<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tr height="27"><td><b>책사회</b></td><td align="right"><b>2010-05-03 13:11:01</b></td></tr></table><br /><br /><P><FONT size=2>"그리고 그 구둣발은 영원히 존재한다는 걸 잊지 말게. 이단자의 얼굴은 언제나 그 밑에 짓밟혀 있을 걸세. 이단자와 사회의 적은 언제나 패배하며 그런 꼴로 억압될 것이네. 자네가 체포된 이후로 겪었던 모든 일들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더욱 심해질 걸세. 간첩 행위, 배신, 체포, 고문, 행방불명, 처형 등의 순환도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이네. 그것은 승리의 세계인 동시에 공포의 세계일세. 당의 권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 무자비해지고, 반대파가 약하면 약할수록 전체주의는 더욱 철저해지게 될 것이네. 물론 골드스타인과 그를 추종하는 이단자들도 영원히 없어질 수는 없지. 그들은 매일 매순간 패배를 맛보고 불신과 비웃으믈 사며 모욕을 당하겠지만, 그러면서도 언제나 살아남게 될 걸세. 지난 칠 년 동안 내가 자네를 위해 꾸민 이 연극도 다시 반복되어 여러 세대를 거쳐 더욱더 교묘한 형태로 되풀이될 것이네. 우리는 이단자를 우리 멋대로 처단할 걸세. 그들은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다가 만신창이가 된 채 우리의 다리를&nbsp; 붙들고는 제발 살려달라며 애걸복걸할 것이네. 윈스턴, 이것이 바로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세계이네. 승리에 승리, 개선에 개선을 거듭하는 세계, 권력의 기반이 더욱 튼튼하게 다져지고 다져지는 그런 세계.... 자네는 그런 세계가 어떤 것인지 이제야 겨우 깨닫기 시작하는 것 같군. 하지만 그저 깨닫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네. 자네도 그걸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받아들여서 그것과 혼연일체가 될 걸세."</FONT></P>
<P><FONT size=2>&nbsp;&nbsp; 윈스턴은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기력을 되찾았다.</FONT></P>
<P><FONT size=2>&nbsp;&nbsp; "당신들은 그럴 수 없을 겁니다."</FONT></P>
<P><FONT size=2>&nbsp;&nbsp; 그가 힘없이 말했다.</FONT></P>
<P><FONT size=2>&nbsp;&nbsp; "그게 무슨 말인가. 윈스턴?"</FONT></P>
<P><FONT size=2>&nbsp;&nbsp; "당신이 방금 말한 그런 세계를 당신들은 만들 수 없단 말입니다. 그건 꿈에 불과합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FONT></P>
<P><FONT size=2>&nbsp;&nbsp; "왜지?"</FONT></P>
<P><FONT size=2>&nbsp;&nbsp; "공포와 증오와 잔인성 위에 문명을 세운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건 결코 지탱될 수 없습니다."</FONT></P>
<P><FONT size=2>&nbsp;&nbsp; "어째서인가?"&nbsp;&nbsp; </FONT></P>
<P><FONT size=2>&nbsp;&nbsp; "생명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붕괴될 겁니다. 그런 문명은 저절로 파멸하게 됩니다."</FONT></P>
<P><FONT size=2></FONT>&nbsp;</P>
<P align=right><FONT size=2></FONT>&nbsp;</P>
<P align=left><FONT size=2>- 조지 오웰. 『1984』. 정회성 역. 민음사, 2006. 375-6쪽.</FONT></P>]]></description>
			<link>http://www.bookreader.or.kr/test/webzine.php?mid=19&amp;r=view&amp;uid=4041</link>
			<dc:creator>책사회</dc:creator>
			<category><![CDATA[이 한 대목]]></category>
						<dc:date>2010-05-03 13:11:01</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남쪽으로 튀어』中에서</title>
			<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tr height="27"><td><b>책사회</b></td><td align="right"><b>2010-04-29 10:40:12</b></td></tr></table><br /><br /><P><FONT size=2>&nbsp;&nbsp;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노예제도나 공민권운동 같은 게 그렇지.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중 한 사람이다. 알겠냐?"</FONT></P>
<P><FONT size=2>&nbsp;&nbsp; 지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FONT></P>
<P><FONT size=2>&nbsp;&nbsp; "하지만 너는 아버지 따라할 거 없어. 그냥 네 생각대로 살아가면 되. 아버지 뱃속에는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벌레가&nbsp;있어서&nbsp;그게 날뛰기 시작하면 비위짱이 틀어져서 내가 나가 아니게 돼. 한마디로 바보야, 바보."</FONT></P>
<P><FONT size=2>&nbsp;&nbsp; 아버지가 자신을 비웃듯 입 끝을 치켜올렸다. 그런&nbsp;식으로 말할 주른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지로는 놀랐다. 누나도 의외라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FONT></P>
<P><FONT size=2>&nbsp;&nbsp; 어머니는 눈을 내리뜨고 웃었다. "자자, 아버지는 내일을 준비해야 하니까 애들은 어서어서 요다 할아버지네 집에 가셔." 일어서서 찻잔을 치우기 시작한다.</FONT></P>
<P><FONT size=2>&nbsp;&nbsp; 마지막으로 누나가 방바닥에 큰대자로 누웠다. "천장, 뻥 뚫려 버렸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FONT></P>
<P><FONT size=2>&nbsp;&nbsp; 지로는 모모코를 마루까지 질질 끌고가 신발을 신겼다. 모모코는 인형처럼 곯아떨어져 있었다. 그대로 떠메고 나가 경운기 짐칸에 실었다. </FONT></P>
<P><FONT size=2>&nbsp;&nbsp; 세 사람 분의 이불도&nbsp;옮겼다. 운전석에는 누나가 앉았다. "이런 걸 운전하는 날이 올 줄이야..." 중얼거리며 쓴웃음을 짓는다.</FONT></P>
<P><FONT size=2>&nbsp;&nbsp; 집을 뒤로 했다. 지로는 이불과 함께 짐칸에 누웠다. 덜컹덜컹 경운기가 달렸다.</FONT></P>
<P><FONT size=2>&nbsp;&nbsp; 뱃속의 벌레...아버지의 말이 귓가에 남아 있었다. </FONT></P>
<P><FONT size=2>&nbsp;&nbsp; 아버지는 이기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칼날을 벼리고 저항에 나섰다. 도저히 좋은 결과는 기대할 수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체포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FONT></P>
<P><FONT size=2>&nbsp;&nbsp; 파이파티로마가 있으면 좋겠다.&nbsp;지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곳이라면 아버지도 자유롭게 살 수 있으리라. 하테루마 저&nbsp;앞의 비밀스러운 낙원....</FONT></P>
<P><FONT size=2>&nbsp;&nbsp; 하늘에서는 별이 빛났다.&nbsp;</FONT></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FONT>&nbsp;</P>
<P align=left><FONT size=2>- 오쿠다 히데오. 『남쪽으로 튀어』. 양윤옥 역. 은행나무, 2006. 245-7쪽</FONT></P>]]></description>
			<link>http://www.bookreader.or.kr/test/webzine.php?mid=19&amp;r=view&amp;uid=4033</link>
			<dc:creator>책사회</dc:creator>
			<category><![CDATA[이 한 대목]]></category>
						<dc:date>2010-04-29 10:40:12</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숨 - 『로드』中 에서</title>
			<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tr height="27"><td><b>책사회</b></td><td align="right"><b>2010-04-26 14:30:12</b></td></tr></table><br /><br /><P><FONT size=2>&nbsp;&nbsp; 여자는 소년을 보자 두 팔로 끌어안았다. 아, 정말 반갑구나. 여자는 가끔 신에 관해 말하곤 했다. 소년은 신과 말을 하려 했으나, 가장 좋은 건 아버지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소년은 실제로 아버지와 말을 했으며 잊지도 않았다. 여자는 그것으로 됐다고 했다. 신의 숨이 그의 숨이고 그 숨은 세세토록 사람에서 사람에게로 건네진다고.</FONT></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nbsp;&nbsp; 한때 산의 냇물에 송어가 있었다. 송어가 호박빛 물속에 서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지느러미의 하얀 가장자리가 흐르는 물에 부드럽게 잔물결을 일으켰다. 손에 잡으면 이끼 냄새가 났다. 근육질에 윤기가 흘렀고 비트는 힘이 엄청났다. 등에는 벌레 먹은 자국 같은 문양이 있었다. 생성되어가는 세계의 지도였다. 지도와 미로. 되돌릴 수 없는 것, 다시는 바로잡을 수 없는 것을 그린 지도. 송어가 사는 깊은 골짜기에는 모든 것이 인간보다 오래되었으며, 그들은 콧노래로 신비를 흥얼거렸다. </FONT></P>
<P>&nbsp;</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FONT>&nbsp;</P>
<P align=left><FONT size=2>- 코맥 매카시. 『로드』. 정영목 역. 문학동네, 2008. 323쪽.</P></FONT>]]></description>
			<link>http://www.bookreader.or.kr/test/webzine.php?mid=19&amp;r=view&amp;uid=4029</link>
			<dc:creator>책사회</dc:creator>
			<category><![CDATA[이 한 대목]]></category>
						<dc:date>2010-04-26 14:30:12</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언어 소멸 - 『공간의 힘』中에서</title>
			<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tr height="27"><td><b>책사회</b></td><td align="right"><b>2010-04-22 14:48:23</b></td></tr></table><br /><br /><P><FONT size=2>오늘날 언어학자들은 토착 언어의 소멸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다. 소멸 위기에 있는 언어들은 아직 그 언어를 구사하는 마을의 얼마 안 되는 노인들이 죽고 나면 조용히 사라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마을의 젊은이들은 이미 더 폭 넓은 언어 사용에 노출되어 있을 것이며, 지역인들은 사라져가는 언어를 살리기 위한 적극적인 운동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만일 그러한 노력이 시작된다면, 그것은 구문과 문법, 단어들의&nbsp;독특한 의미나 가치를 인식하고 있는 외부인들에게서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한 것들은 한 언어의 생태적 환경, 혹은 그 언어가 구사자들의 "세계"를 보는 방식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사라져가고 있는 언어들의 대다수가 문서화되거나 기록된 적이 없지만, 그들 중 일부는 환경 변화, 초기 이주, 생태학, 신념체계 등에 대한 중요한 증거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언어들을, 연구 자금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많이 문서화하려는 움직임이 점점 더 활발해지고 있지만, 언어들이 사라져가는 속도가 더욱&nbsp;빨라지고 있어 그러한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미완의 작업이&nbsp;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nbsp;</FONT></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 하롬 데 블레이. 『공간의 힘』. 황근하 역. 천지인, 2009.&nbsp;57-8쪽.&nbsp;</P></FONT>]]></description>
			<link>http://www.bookreader.or.kr/test/webzine.php?mid=19&amp;r=view&amp;uid=4025</link>
			<dc:creator>책사회</dc:creator>
			<category><![CDATA[이 한 대목]]></category>
						<dc:date>2010-04-22 14:48:23</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기업의 신념 - 『구글드: 우리가 알던 세상의 종말』中에서</title>
			<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tr height="27"><td><b>책사회</b></td><td align="right"><b>2010-04-19 17:26:41</b></td></tr></table><br /><br /><FONT size=2>그러나 구글 문화의 핵심은 엔지니어든 관리자든 마케터든 무관하게, 구글 직원이라면 누구나 '구글의 미덕'을 믿는다는 것이다. 창업 첫날부터 구글은 광고 수입을 포기했다. 다른 경쟁 검색엔진들과는 달리 홈페이지에 광고하기를 거부하고, 광고주들이 돈으로 검색 결과 상위를 차지하지 못하게 한 탓이다. 현재의 구글 역시 더 많은 광고를 내보낼 수 있지만, 그러는 대신 클릭을 끌어내지 못하는 광고나 사용자가 정보와 '무관하다'고 느끼는 광고를 없앤다. 엔지니어 맷 커츠Matt Cutts 가 말하듯, 구글 신념체계의 밑바탕에는 '사용자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는 믿음이 있다. 사용자들이 '구글은 광고 때문에 산만하지 않고 빠르고 단순하다'고 느낄 수 있고, '구글이 사용자들을 인위적으로 자기 사이트로 끌어들이려고 하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당연히 신뢰가 형성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우리는 정교분리 원칙을 지키듯이 구글 검색 결과와 광고 사이의 벽을 지킵니다." 래리 페이지가 빗대어 말했다. 구글의 방식을 신문사가 신문기사에 광고주의 입김이 닿지 않게 하려고 애쓰는 것과 비유하면서, 페이지는 "둘 사이에 어쩔 수 없이 갈등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FONT>
<P><FONT size=2><FONT size=2></FONT></FONT>&nbsp;</P>
<P><FONT size=2><FONT size=2></FONT></FONT>&nbsp;</P>
<P><FONT size=2><FONT size=2>- 켄 올레타. 『구글드: 우리가 알던 세상의 종말』. 김우열 역. 타임비즈, 2010. 43-4쪽.</FONT></P></FONT>]]></description>
			<link>http://www.bookreader.or.kr/test/webzine.php?mid=19&amp;r=view&amp;uid=4022</link>
			<dc:creator>책사회</dc:creator>
			<category><![CDATA[이 한 대목]]></category>
						<dc:date>2010-04-19 17:26:41</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혁명도 반동도 석탄이 필요하다 - 조지 오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중에서</title>
			<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tr height="27"><td><b>책사회</b></td><td align="right"><b>2010-04-07 11:12:36</b></td></tr></table><br /><br /><P>&nbsp;</P>
<P>&nbsp;</P>
<P>광부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다른 세상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고 문득 깨닫게 될 것이다.&nbsp;저 아래&nbsp;누가 석탄을&nbsp;캐고 있는&nbsp;곳은, 그런 곳이 있는 줄&nbsp;들어본 적도 없이도 잘만 살아가는 이곳과는&nbsp;다른 세상이다. 아마 대다수 사람들은 그런 곳&nbsp;얘기는 안 듣는 게 좋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세계는 지상에 있는 우리의 세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머지 반쪽이다. 아마도 우리가&nbsp;하는 모든 것, 말하자면 아이스크림을&nbsp;먹는 것부터&nbsp;대서양을 건너는 것까지,&nbsp;빵을 굽는 것부터 소설을&nbsp;쓰는 것까지, 모든 게 직간접적으로 석탄을 쓰는 것과 상관이 있다. 평화를 위한 모든 수단에 석탄이 필요하며, 전쟁이 터지면 석탄은 더욱 필요해진다. 혁명기에도 광부는 계속 일하러 가야 한다. 아니면 혁명이 중단될 수 밖에 없다. 혁명도 반동도 석탄이 필요하기&nbsp;때문이다. 지상에 어떤 일이&nbsp;벌어지건, 석탄을&nbsp;파고 퍼담는 작업은 쉬지 않고&nbsp;계속되어야&nbsp;한다. 아니면 길어도 몇 주 이상 중지되어서는 안된다.&nbsp;히틀러가 거위걸음으로 행진하기 위해, 교황이 볼셰비키 사상을 지탄하기 위해, 로즈 경기장에 크리켓 관중이 몰리기&nbsp;위해, 동성애자 시인들이 서로의 등을 긁어주기 위해, 석탄은 언제든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nbsp;&nbsp;&nbsp;&nbsp;&nbsp;&nbsp;</P>
<P>&nbsp;</P>
<P>&nbsp;</P>
<P>- 조지 오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이한중 역. 한겨레출판,&nbsp;2010. 47쪽.&nbsp;</P>]]></description>
			<link>http://www.bookreader.or.kr/test/webzine.php?mid=19&amp;r=view&amp;uid=4009</link>
			<dc:creator>책사회</dc:creator>
			<category><![CDATA[이 한 대목]]></category>
						<dc:date>2010-04-07 11:12:36</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덕(德)의 윤리 - 「새로운 시대의 윤리」中에서</title>
			<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tr height="27"><td><b>책사회</b></td><td align="right"><b>2010-04-05 11:30:51</b></td></tr></table><br /><br /><P><FONT size=2><FONT size=2>&nbsp;&nbsp;&nbsp; 우리는 도덕적인 의무만이 아닐, 의무 이상의 행위도 합니다. 때로 살신성인(殺身成仁)하는 행동도 하고, 때로 영웅적인 희생을 할 수도 있지요. 선의로 사회에 많은 재산을 쾌척하는 것이 의무는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도덕적으로 '의무 이상의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담은 새로운 윤리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의무 윤리도 중요하지만, 전통적인 덕(德)의 윤리가 되살아나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방금 제가 말씀드린 대로 의무만 가지고 윤리적인 실천을 다 설명하기는 어렵기에 윤리의 영역을 조금 더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행위, 즉 두잉(doing)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품과 성품, 존재 자체가 달라져야 합니다. 다시 말해 비잉(being)도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처럼 최근에 '덕의 윤리'라는 주제가 윤리학에서 새롭게 부상했습니다. </FONT></FONT></P>
<P><FONT size=2><FONT size=2>&nbsp;&nbsp;&nbsp; 전통적인 의무 윤리학자들은 어떤 것이 의무인가를 밝히는 데 주력했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사람들이 의무가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덕의 윤리는 바로 그 실천을 특히 강조하는 새로운 추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략]&nbsp;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나 공맹(孔孟) 철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의지를 연마하고 단련해서 강화하는 것입니다. 의지력을 강화해서 도덕적인 용기, 다시 말해 덕(virtue)을 함양하는 것이 윤리학의 아주 중요한 주제가 되었죠. 바로 이것이 도덕적 실천을 보증하기 때문입니다.&nbsp; </FONT></FONT></P>
<P><FONT size=2><FONT size=2></FONT></FONT>&nbsp;</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FONT size=2>- 황경식. 「새로운 시대의 윤리」. 김경동 외 13인. 『인문학 콘서트』. 이숲, 2010. 161-3쪽.</FONT></P></FONT>]]></description>
			<link>http://www.bookreader.or.kr/test/webzine.php?mid=19&amp;r=view&amp;uid=4006</link>
			<dc:creator>책사회</dc:creator>
			<category><![CDATA[이 한 대목]]></category>
						<dc:date>2010-04-05 11:30:51</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홍염」中에서</title>
			<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tr height="27"><td><b>책사회</b></td><td align="right"><b>2010-03-29 14:26:33</b></td></tr></table><br /><br /><P><FONT size=2>&nbsp;&nbsp; 이런 불 속으로부터 여러 사람이 오고 가는 밭 가운데로 튀어나가는 두 그림자가 있었다. 하나는 커단 장정이요 하나는 작은 여자이다. 뒷산 숲에서 이것을 보던 문 서방은 그 두 그림자를 향하고 내리뛰었다. 그는 천방지방 내리뛰었다. 독살이 잔뜩 올라서 불빛에 번쩍이는 그의 눈에는 이 두 그림자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FONT></P>
<P><FONT size=2>&nbsp;&nbsp; "으윽, 끅."</FONT></P>
<P><FONT size=2>&nbsp;&nbsp; 문 서방이 여러 사람을 헤치고 두 그림자 앞에 가 섰을 때, 앞에 섰던 장정의 그림자는 땅에 거꾸러졌다. 그때는 벌써 문 서방의 손에 쥐였던 도끼가 장정 인가의 머리에 박혔다. 도끼를 놓은 문 서방의 품에는 어린 여자의 그림자가 안겼다. 룡녜가....</FONT></P>
<P><FONT size=2>&nbsp;&nbsp; 그 바람에 모여 섰던 사람들은 혹은 허둥지둥 뛰어버리고 혹은 뒤로 자빠져서 부르르 떨었다. 룡녜도 거꾸러지는 것을 안았다.</FONT></P>
<P><FONT size=2>&nbsp;&nbsp; " 룡녜야! 놀라지 마라! 나다! 아버지다! 룡녜야!"</FONT></P>
<P><FONT size=2>&nbsp;&nbsp; 문 서방은 딸을 품에 안으니 이때까지 악만 찼던 가슴이 스르르 풀리면서 독살이 올랐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떨어졌다. 이렇게 슬픈 중에도 그의 마음은 기쁘고 시원하였다. 하늘과 땅을 주어도 그 기쁨을 바꿀 것 같지 않았다.</FONT></P>
<P><FONT size=2>&nbsp;&nbsp; 그 기쁨! 그 기쁨은 딸을 안은 기쁨만이 아니었다. 작다고 믿었던 자기의 힘이 철통 같은 성벽을 무너뜨리고 자기의 요구를 채울 때 사람은 무한한 기쁨과 충동을 받는다.</FONT></P>
<P><FONT size=2>&nbsp;&nbsp; 불길은---그 붉은 불길은 의연히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처럼 하늘하늘 올랐다.</FONT></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FONT>&nbsp;</P>
<P align=left><FONT size=2>- 최서해. 「홍염」. 이남호 편. 『한국단편문학선 1』. 민음사, 2006. 174쪽.</FONT></P>]]></description>
			<link>http://www.bookreader.or.kr/test/webzine.php?mid=19&amp;r=view&amp;uid=4000</link>
			<dc:creator>책사회</dc:creator>
			<category><![CDATA[이 한 대목]]></category>
						<dc:date>2010-03-29 14:26:33</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산책 -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中에서</title>
			<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tr height="27"><td><b>책사회</b></td><td align="right"><b>2010-03-25 10:56:52</b></td></tr></table><br /><br /><FONT size=2>&nbsp;&nbsp; "영화감독이라고 하셨죠?"</FONT> 
<P><FONT size=2>&nbsp;&nbsp; "네."</FONT></P>
<P><FONT size=2>&nbsp;&nbsp; "제가 영화를 본지가 오래돼서. 어떤 영화를 찍으셨나요?"</FONT></P>
<P><FONT size=2>&nbsp;&nbsp; 그는 잠시 생각해봤다.</FONT></P>
<P><FONT size=2>&nbsp;&nbsp; "어떤 영화를 찍었다기보다는 어떤 여자를 찍은 거죠."</FONT></P>
<P><FONT size=2>&nbsp;&nbsp; "돈이 많은 모양이네요. 한 여자를 위해서 영화를 다 찍고."</FONT></P>
<P><FONT size=2>&nbsp;&nbsp; "그래서 지금은 코끼리 한 마리만 남기고 빈털터리가 됐어요."</FONT></P>
<P><FONT size=2>&nbsp;&nbsp; "코끼리? 정말 부자였나 보네요."</FONT></P>
<P><FONT size=2>&nbsp;&nbsp; Y씨가 기분 좋게 웃음을 터뜨렸다. 폐암 다음에는 헤르페스가 찾아 왔고, 그 다음에는 죽어야만 끝낼 수 있는 신장 투석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리고 거기 있다고 생각하지만, 존재를 증명할 길은 요원한 '제발'이 늘 존재하고 있었지만, Y씨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런 사실을 짐작하기는 어려웠다. </FONT></P>
<P><FONT size=2>&nbsp;&nbsp; "제 말이 다음 작품을 찍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제목이 뭐라고 하셨더라."</FONT></P>
<P><FONT size=2>&nbsp;&nbsp;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이에요."&nbsp;&nbsp; </FONT></P>
<P><FONT size=2>&nbsp;&nbsp; "그 영화로 다시 부자가 되기를 바라요. 코끼리 먹이 살 돈은 있어야만 할 거 아니야. 취재를 더 하고 싶으시면 토요일에 다시 오세요. 암환자를 위한 고궁 산책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으니까. 물론 내가 만든 모임이에요."</FONT></P>
<P><FONT size=2>&nbsp;&nbsp; "알겠습니다. 다시 또 오겠습니다."</FONT></P>
<P><FONT size=2>&nbsp;&nbsp; 두 사람은 출구를 빠져나와 고궁 앞 광장을 가로질렀다. 아직 해가 지려면 멀었고, 하늘은 한낮과 다름없이 환하고도 파랬다. 혼자서 걷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저마나 다른 곳에서부터 걷기 시작한다. 저처럼 한낮과 다름없이 환하고도 파란 하늘에서, 혹은 스핀이 걸린 빗방울이 떨어지는 골목에서, 분당보다도 더 멀리, 아마도 우주 저편에서부터. 그렇게 저마나 다른 곳에서 혼자서 걷기 시작해 사람들은 결국 함께 걷는 법을 익혀나간다. 그들의 산책은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과 함께하는 산책과 같았다. 그들의 산책은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과 함께하는 산책과 같을 것이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주차장을 빠져나온 그들의 눈앞으로 버스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4차선 도로를 봉쇄한 경찰들이 보였다. 어디선가 함성이 요란했다. 두 사람은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바라봤다. 검은색 진압복을 입고 열을 맞춰 앉아 있는 경찰들과, 그보다 뒤쪽에서 무전기를 든 손으로 팔짱을 끼고 그들을 바라보는 지휘관들과, 그보다 더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는 살수차와, 앞쪽에서 서로 뒤엉킨 채 버스와 담벼락 사이를 막고 선 또 다른 경찰들과, 그들의 검은색 투구에서 2미터 정도 위쪽으로 지나가는 바람과, 어디선가 들려오는 함성과, 또 함성과, 또 라는 함성과..., 고통, 아아, 그 고통을. 지네와 베짱이와 수컷 사마귀와, 또 오랑우탄이나 코뿔소, 토끼, 어쩌면 매머드나 티라노사우루스같은 것들을.</FONT></P>
<P><FONT size=2>&nbsp;&nbsp; "어때요? 괜찮아요? 조금 더 걸어볼까요?"</FONT></P>
<P><FONT size=2>&nbsp;&nbsp; Y씨가 그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FONT></P>
<P><FONT size=2>&nbsp;&nbsp; "조금 더 걸어보자는 말이지요? 그래요, 이 거리. 제가 좋아하는 거리니까."&nbsp;&nbsp; </FONT></P>
<P><FONT size=2>&nbsp;&nbsp; 그리고 그녀와 꼭 붙어서 다니던 거리니까.</FONT></P>
<P><FONT size=2>&nbsp;&nbsp; "맞아요. 저도 좋아하는 거리예요."</FONT></P>
<P><FONT size=2>&nbsp;&nbsp; 그렇게 걸어가는 그들을 향해 무전기를 든 경찰 하나가 두 팔로 X자를 만들어 보인뒤, 오른손을 뻗어 길 뒤쪽을 가리켰다. Y씨와 그는 경찰이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바라봤다. 또한 코끼리와 지네와 베짱이와 수컷 사마귀와 함께. <STRONG><FONT face=궁서>그것</FONT></STRONG>을.</FONT></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FONT>&nbsp;</P>
<P align=left><FONT size=2>- 김연수. <FONT size=2>「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김연수 외. </FONT>『제 3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 2009. 28-32쪽.</FONT></P>]]></description>
			<link>http://www.bookreader.or.kr/test/webzine.php?mid=19&amp;r=view&amp;uid=3994</link>
			<dc:creator>책사회</dc:creator>
			<category><![CDATA[이 한 대목]]></category>
						<dc:date>2010-03-25 10:56:52</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신성한 장소 -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中에서</title>
			<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tr height="27"><td><b>책사회</b></td><td align="right"><b>2010-03-22 14:11:30</b></td></tr></table><br /><br /><FONT size=2>&nbsp; 청년은 평소 낮잠을 즐겼기에 이란 유학 시절에도 도서관에서 쪼그리고 자곤 했다. 어느 날 한 학생이 옆에 다각와서 왜 불편하게 이렇게 있냐면서 사원에 가서 편안하게 자라고 했다. 그는 깜짝 놀라 반문했다. "아니 사원은 신성한 곳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학생은 의아해 하면서 답변했다. "사원은 힘들 때 쉬는 곳이 아닌가요? 아이들이 편하게 노는 곳도 사원이죠. 진정 신성한 장소는 바로 그런 곳입니다." 곧바로 사원으로 달렸다. 테헤란 국립 대학교 한가운데에는 큰 사원이 자리 잡고 있다. 사원 안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한 가운데에는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있고, 왼쪽 구석에는 정말로 낮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른쪽에는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FONT>
<P><FONT size=2>&nbsp;&nbsp; 이슬람 사원의 입구에는 계단이 없다. 이슬람에서는 누구나 손쉽고 자연스럽게 사원을 방문할 수 있도록 권위를 상징하는 계단을 없앴다. 또한 사원은 시장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사원의 문은 시장으로 연결되어 누구든지 사원을 드나들 수 있고, 많은 이들이 사원을 통해 다른 곳으로 다닌다. 우리는 이러한 문화를 가진 무슬림들을 보면 당황하게 된다. 말도 많고 요구사항도 많은 모습도 낯설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이러한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고 또 당연한 것이다. </FONT></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FONT>&nbsp;</P>
<P align=left><FONT size=2>- 유달승.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 한겨레출판. 2009. 24-5쪽.</P></FONT>]]></description>
			<link>http://www.bookreader.or.kr/test/webzine.php?mid=19&amp;r=view&amp;uid=3987</link>
			<dc:creator>책사회</dc:creator>
			<category><![CDATA[이 한 대목]]></category>
						<dc:date>2010-03-22 14:11:3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이솝우화 - 『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中에서</title>
			<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tr height="27"><td><b>책사회</b></td><td align="right"><b>2010-03-15 12:05:16</b></td></tr></table><br /><br /><P><FONT size=2>그동안 우리는 이솝 우화가 어린이들에게 착하고 바르게 살아가도록 가르치는 내용이라고 믿었다. '토끼와 거북이', '북풍과 해님', '양치기 소년과 늑대' 등이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이솝 우화가 아니었던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이런 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우리에게 거짓말하지 말고 성실하게 노력해야 하며, 친구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야 한다는 '착한' 교훈을 가르쳐 주려고 했다. 그렇지만 『이솝 우화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면 그런 교훈을 담고 있는 이야기는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바른생활'용 우화들 중 많은 이야기가 이솝이 지은 게 아니라 후대에 덧붙여졌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영국에서 빅토리아 시대에 이솝 우화를 번역 출판하면서 도덕주의가 강하게 덧칠되었다. 이때 도덕주의자들의 기준에 맞지 않는 이야기가 많이 빠지고, 그 대신 편집자 스스로 창작한 이야기가 많이 들어갔다고 한다. 그들은 우화라는 이 강력한 교육 수단을 이용해서 그 시대가 중시하는 덕목들을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려고 했던 것이다. </FONT></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FONT>&nbsp;</P>
<P><FONT size=2>- 주경철. 『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 사계절, 2009. 13쪽.</FONT></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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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책사회</dc:creator>
			<category><![CDATA[이 한 대목]]></category>
						<dc:date>2010-03-15 12:05:16</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chan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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