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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11-04
    10주년 기념 연속 독서토론의 마지막을 뜨겁게 달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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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쟁점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논쟁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다

    -『정치의 발견』 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있던 10월 26일 저녁, 책읽는사회 10주년 기념 연속토론의 마지막인 『정치의 발견』 독서토론이 학생과 직장인 등 50여명이 모인 가운데 ‘책읽는사회’ 강의실에서 당초 예정된 시간을 넘겨 무려 3시간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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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인 박상훈 선생과 문화평론가 이명원 선생이 토론패널로 참석하고, 지난 9월에 이어 한겨레신문의 고명섭 기자가 진행을 맡아주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세 분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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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강의’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정치의 발견』은 2011년 1월에 출간된 책입니다. 저자가 부지런히 작업해 10월 말경에 재출간한 개정판에는 정치고전 강독이 추가되어 더욱 풍부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정치학 개론서로 읽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하고, 좋은 책입니다.

     

    박상훈 선생은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사실 읽은 책을 이해하기 시작한 건 실체정치를 관찰하면서부터였다”고, “민주화 이후의 한국정치가 더 좋은 교재”였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말문을 트셨습니다.

     

    (이날 토론을 위해 핵심질문지와 책의 요약문이 배포되었습니다. 지정토론에서 준비된 핵심질문은 16개였습니다만, 이 중에 두어 가지만 소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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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1.

     

    박 선생님은 이 책에서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비중 있게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십니다.  “나는 진보적인 것보다 정치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보다 인간적인 것이 더 넓고 풍부한 세계라고 생각한다.”(24) 깊이 동의할 수밖에 없는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주장에 이 책을 쓴 핵심적인 이유가 응축돼 있다고도 느껴집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진보파의 경우 저변에 흐르는 생각 중에 이 문장과 반대되는 사고가 있지 않나 생각되는데요. 인간적인 것보다 정치적인 것이 더 중요하고, 정치적인 것보다 진보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생각 말이지요.

     

    박 선생님은 “진보적이되 좀더 정치적이고 좀더 인간적이 되어야 한다”(24) 그런 말씀도 하시는데, 이걸 강조하는 이유를 좀더 분명하게 이야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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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훈

    우리는 진보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진보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의 많은 노력에 힘입어 민주화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진보파가 실제 정치 세력화되는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내면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당연히 성과도 많지 않았고. 저는 상당부분 그 원인이 진보적인 것 안에서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에 문제가 있었다고 봅니다. 진보(세력)도 정치의 세계에서 힘을 내고 인간들의 삶에 기여를 하고자 한다면, 본인이 정치 세계를 이해하고 그 정치를 통해서 풍요로워지는 인간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진보는 과거의 희생 때문에 도덕적 우월의식을 무의식중에 갖게 되면서, 실제 민주주의라고 하면 평등하게 대우하고 노력한만큼 성취를 내야하는데, 이 과정에서 주로 화만 내고 분노하면서 못했던 부분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후마니타스 출판사는 진보적인 책을 내는 출판사지만 기본적으로 출판기업입니다. 그렇다면 진보적인 책을 내는 데서 자부심을 갖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좋은 기업이 되어야 하고, 기업의 성과가 일하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급여와 인간적인 노동 조건들을 통해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진보적인 출판사들은 노사관계가 대개 나쁩니다(웃음). 저자 인세 안 줍니다. 저는 이런 거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가능한 기부를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진보언론도, 정치도 같은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진보 내 우월적 진보의식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이런 말씀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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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원

    이 책을 읽으며 ‘인간에 대한 이해’라는 부분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옳은 말이고 또 그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도덕적 정당화, 도덕적 우월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원한의 폭력성이 있다고 봅니다. 상실된 것을 현재에 다시 복원하려고 하는, 좋은 의미에서 열망일 수 있고 나쁜 의미에서 피해의식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지적한 것은 의미있다고 봅니다.

     

    다만 이의를 제기하자면 진보파라고 범주화를 하고 계신데, 사실 이 막연한 범주화는 소위 진보적 세계관과 입장을 가지고 있는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단일한 이미지로 고정시키는 것이 아닌가, 나쁜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듭니다. 이런 것들은 범주를 설정할 필요가 있겠다, 진보일반에 대한 경향적 비판이라는 것이 과도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도 있겠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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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2.

     

    신문 칼럼 이야기가 나온 김에 박상훈 선생님도 최근 한겨레신문에 쓴 칼럼에서 서울 시장 선거와 관련해 시민후보 대망론에 대해 비판적으로 언급하셨지요?

     

    “그런데 최근 그 (새로운 인물 대안) 흐름이 시민후보론으로 이어지면서 뭔가 잘못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자칭 시민 후보 모두 ‘정치가 아니라 행정’을 말한다. 정치란 ‘정당으로 나눠 싸우는 일’인데 그게 아니고 ‘시민 삶을 보살피는 행정’을 하겠단다. 파당적 이해관계를 두고 다투는 정당후보가 아니라 시민 모두를 위한 공익의 실천자가 후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치를 회피하고 갈등과 분열 없이 모두를 구원하고 싶겠지만, 그런 착한 바람만으로는 안 되는 게 인간의 현실이다. 힘들지만 과감하게 정치가의 길을 가려 해야 하고 그 길에서 실력과 유능함을 발휘하고자 노력하는 것 이외에 다른 길이 있을까?”(<한겨레> 2011년 9월26일치 ‘시민후보론에 대한 회의’)

     

    시민후보에 대한 민주진보파의 열망과 기대가 아주 큰 상황에서 쓴 글이라 용기가 많이 필요하셨을 텐데, 저는 그런 생각을 수긍하면서도 또 이 급박한 시국에 지나치게 원론적인 주장이 아니냐 하는 생각도 해봤는데요, 그 점에 대해 한 번 더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사실 이 토론이 끝나고 나면 서울시장 선거 윤곽도 이미 나와 있을 테지만 그 결과와는 상관없이 한번 고민해볼 만한 주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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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훈

     

    정치이야기를 하는 것이 위험한 일이라는 걸 점점 생각하게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웃음). 개인적으로는 민주주의냐 아니냐는 더 이상 중요한 질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어떤 민주주의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진보정당이 있는 민주주의를 바랍니다.

     

    제가 진보적이기 때문에 그걸 바라는 게 아니고, 우리가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할 때 민주주의는 일정한 가치합의를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민주주의는 대체적으로 헌법이나 인권헌장 등을 통해 평등, 자유, 생명, 행복추구 등의 요소들을 추구합니다.

     

    전세계에 민주주의 국가가 대략 110개인데 그 중에서 어느 나라가 비정규직이 적고, 빈곤률이 낮고, 10대 임신과 약물복용과 비만률이 적은지, 제소자율도 적고, 강력범죄율도 낮은지, 동시에 기대수명과 투표율은 어느 나라가 높은지 등을 조사해보면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나라는 두 가지 기준을 만족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는 진보정당들의 득표율이 높고 진보정당의 집권시기가 길수록 투표율 높고 평등하고 건강하고 평화롭습니다. 다른 하나는 노동운동의 힘입니다. 노조조직률이 높은 나라, 노사교섭력이 강한 나라, 이런 나라가 대체적으로 좋은 사회를 만듭니다. 제가 진보정당이 ‘있는’ 사회를 바란다는 건 민주주의적 가치의 성취율이 가장 높은 쪽이 진보정당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정치를 바라보는 기본태도는 저는 파당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모든 의견을 다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귀족적 공화주의’입니다. 근대 초기에 노동자들과 여성들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섰을 때 귀족들은 말했습니다. “아니, 왜 너희들은 부분 이익을 갖고 다투냐, 우리는 지금 사회 공익을 위해서 나서야 하는데.” 같은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 어디를 봐도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나’는 어떤 파당적 의견을 갖고 있다고 기꺼이 말해야 하고, 내 파당적 견해가 다른 파당적 견해와 부딪히면서 사회에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게 해야 합니다. 그게 저는 진보지식인들이 견지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우리나라처럼 진보파나 지식인들이 정당 가입을 안 하는 나라도 없습니다.

     

    유럽의 지식인들은 어떤 경우든 파당적이고, 정당에 가입해 있고 그 범위에서 책임을 지려고 노력합니다. 과감하게 “나는 어떤 사회의 한 부분의 이익을 대표하고 싶다, 그런데 그 이익이 그간 별로 대표되지 않았고 보호받지 않았던 부분이기 때문에 나는 그 의견이 갖고 있는 파당성을 기꺼이 감내할 것이다”라는 태도를 견지하는 게 저는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는 근본적으로 파당적인 것들이 맞물리면서 사회에 유익하게 결과를 낼 수 있는 길을 가야합니다. 그런데 당시 시민후보를 내세웠던 논리는 근본적으로 ‘귀족적 공화주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그 논리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선택은 선택이고, 선택 중에는 차악을 원할 때도 있는 것이고, 최선을 못얻더라도 행동(투표)을 해야하고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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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원

     

    “시민 삶을 보살피는 행정”이라는 표현을 한 후보가 있는데, 사실 이것은 관료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박선생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제기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기존의 정당 안에서 후보를 제출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 있는데 왜 시민후보로 쏠리고 있느냐? 저는 이것이 하나의 증상이고 징후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유럽을 포함해 미국에서 ‘월가를 점령하라’ 등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정치가 해야 할 일은 이같은 징후를 실질적 정치적인 힘으로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치세력들이 이러한 징후 자체에 대한 해석을 안 하고 있어요. 끊임없이 나타나는 징후나 경고나 증상을 제도개혁이나 정당 내부의 혁신 과정에 어떻게 연결하고 받아들이냐의 문제가 시민후보론과 정당 냉소주의의 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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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가시간이 되어 아쉽게 방을 나선 몇몇 분들을 제외하고 세 시간 동안 미동도 없이 토론에 참여해 주신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 드립니다.

    진행을 맡은 고명섭 기자는 토론이 끝난 후에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밀도있게 토론에 참여하는 청중이 있는 토론장은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토론을 제외하고는 만나기 힘들다"며  감회를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이로써 2011년 사회적독서토론 프로그램을 모두 마칩니다. 내년에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만나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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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맛보기

     

    당신은 정치가를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정치가는 필요하고 또 중요한 존재라고 보는가? 민주주의와 정치가는 도대체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일까? 혹 민주주의는 시민이 주인인 체제이므로 정치가는 시민의 의사에 따라 봉사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고 민주주의에서도 정치가가 중요하다고 한다면 당신은 어떤 사람이 정치가가 되어야 한다고 보는가? 좋은 정치가라고 여길 만한 사람의 특징이나 기질 같은 것은 있는 것일까? 정치가의 길을 간다고 할 때 그가 부딪히게 되는 도전은 무엇이고, 그러한 도전을 헤쳐 나가고자 할 때 직면하게 되는 윤리적 딜레마는 무엇인가?(23)

     

    아무튼 서로 다른 사회경제적 내용을 이념의 틀 안에서 발전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 민주화 운동이 실천되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흥미로운 상황전개는 일종의 ‘전체주의적 민주주의’라고 불릴만한 현상이다. 다시 말해 바람직한 정치적 가치들이 모두 민주주의라는 말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유주의의 요소도, 공동체주의적 요소도, 사회주의의 요소도 쉽게 민주주의적인 것으로 이해되었다. 좋은 것은 다 민주주의 안으로 쑤셔 넣어졌다.(94)

     

    시민의 위대함을 수백 번 말해도 현실의 정치적 대표 체제가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제대로 대표하는 방향으로 변화되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이 하층 배제적이고 상층 편향적인 민주주의는 개선되기 어렵다. 촛불 집회에 나타난 민주적 열망을 어떻게 정당 체제를 변화시키는 에너지로 확대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115).

     

    촛불집회는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가 갖게 된 특정의 패턴 내지 악순환의 구조를 해체하는 일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한국에서 민주화가 운동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그 운동의 에너지가 민주화 이후 체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배제되었던 데서 비롯되었다. 민주화 이후 체제의 형성은 구체제에 기원을 둔 보수적 정치 세력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보수 독점적 정당 체제가 등장했고, 이와 사회적 요구 사이의 괴리는 계속되었다.(115)

     

    정치적 이상이란 기본적으로 불확실성에 대한 존중, 무지의 가능성에 대한 자각, 진보만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닌 이념과 가치의 다원주의, 누구든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의 존중, 타인에 대한 인간적 정중함과 관용 등을 내용으로 한다.(173)

     

     

     

    ~ 『정치의 발견』 독서토론 2011년 10월 26일 수요일 저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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