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46
  • 2009-07-02
    정은숙의

  • [네이버 2006/03/29]
    sketch6024710-mrbookman


    정은숙│출판사 대표, 시인

     

    업이 책을 만드는 일이고, 여가에도 책을 읽기가 십상인 사람, 나. 나의 하루는 책에 둘러싸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겐 이런 내가 ‘웬 외계인?’ 일지도 모르겠다. 술을 마셔도 필자나 작가와 마시고, 여가가 있어도 책 헌팅을 위해 서점엘 가고, 또 침실에도 책을 괴고 잠이 드는 생활이 벌써 20년을 훌쩍 넘는다. 내가 생각해도 때로 현기증이 난다.

     

    그런게 웬걸, 이 정도는 약과다. 소문난 책 마니아 얘기는 전설이 아니라 실제로 있어왔다. 10세기 페르시아의 재상은 개인 도서관을 만들 정도로 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었는데, 한시라도 책과 떨어지고 싶지 않아 400마리의 낙타에 책을 전부 싣고 다니면서 읽었다고 하고, 또 조선시대 가난한 문인 이덕무는 <한서> 책을 잇대어 덮고 자며 <논어> 책을 병풍처럼 두른 채 살았다고 하니 읽기의 욕망, 독자로서의 욕망이 오늘날 책문화, 지식 정보 문화를 낳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재미를 최고의 가치로 치는 일본의 방송계. 그래서 여자 출연자가 자신의 가슴을 들어 보이고, 맞고 때리고 엎어지고 하는 프로가 성행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처럼 재미있지 않으면 텔레비전도 안 보는데, 책도 과연 어떨까? 책도 텔레비전만큼 재미있을까? 누리꾼이 인기 화제를 따라 인터넷 서핑을 하듯이 책도 과연 그런 정도의 정보와 재미를 줄까?

     

    ‘당근’ 책읽기가 주는 재미도 만만치 않고, 영상 매체 못잖은 즐거움을 준다. 아니 못잖게 주는 것이 아니라 차원이 다르게 준다. 내 주위의 책 마니아들은 곧잘 이런 질문을 듣는다고 한다. ‘거, 책이 일용한 양식도 아닌데 왜 그리 기를 쓰고 읽는가요?’ 하고. 그들은 한결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너무 재미있으니깐요. 재미있지 않는데 누가 읽겠어요?’

     

    결심 여하에 따라서는 신록이 움터오는 이 계절에 산으로 들로 꽃놀이도 갈 수 있는데, 이 좋은 봄날 고답적으로 왜 책을 읽고 있겠는가?

     

    그렇다, 책 읽기는 즐겁다. 그런데 이 즐거움은 영상매체가 주는 즐거움과는 좀 다른 형태다. 만약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재미없다고? 그럼 치우고 다른 책을 읽기로 하자. 지금 재미있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다고? 그렇다면 책을 펴라. 바로 그 책이 그대를 지겨움과 귀차니즘의 세계로부터 재미와 건강한 노동에의 환기를 불러올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잡스런 상념들이 엄습해 온다고? 그렇다면 그 상념을 따라가도 좋다. 상념들 가운데도 건설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고, 또 책 읽기를 풍부하게 할 수도 있다. 그 상념 끝에 우리는 우리 현실의 다른 모습을 새로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은 직간접적으로 자신이 보지 않은 것은 잘 상상할 수 없다. 네스 호의 괴물이나 천지에 산다는 괴물이나 용, 봉황 등 상상의 동물, 또 심지어 UFO조차 모든 것이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물과 매개되어 떠오르는 사물이다. 이런 것을 누군가 상상해서, 이를 기록으로 남겨 놓지 않았다면 오늘 우리 땅에 있는 어떤 것도 영속할 수가 없다.

     

    책의 기록에는 독특한 편집 방식이 있으니 흔히 ‘체제’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체제가 없으면 그것은 단지 데이터 스모그에 불과할 것이다. 인터넷상의 어떤 정보는 너무 날것이고 검증되지 않은 것이어서 책의 체제에 도저히 못 미치는 것이 있다. 누리꾼들이 때로 이 점을 쉽게 간과하는 듯도 하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많은 관계들이 있고, 때로 부적절한 만남은 구설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책과의 만남은 어떤 만남이라도 좋다. 부적절한 만남이 완전히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당신이 그 리스크를 질 필요는 없다. 책을 구입하는 비용이 아깝다면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도 있지 않는가?

    종종 나보다 나이가 적은 후배들에게 말하곤 한다.

     

    “책은 네가 어렵다고 안 하는데, 너는 왜 그렇게 책을 어렵다고 하니? 좀 즐기면 안 되겠니? 대한민국에 안 되는 게 어디 있니?”


    그렇게 말하고 나면 정말이지 좌중의 분위기는 썰렁해지고 그 순간 나는 외계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jes-mrbookman
    정은숙│이화여대 정외과 졸업하였으며 1985년 출판계 입문, 현재 <마음산책> 출판사의 대표이다. 1992년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시집 <비밀을 사랑한 이유><나만의 것> 산문집 <편집자 분투기>등이 있다. SBI(서울북인스티튜트) '편집자입문과정' 책임교수와 대한출판문화협회 이사로도 활동중이다. 

     

     

    ending-mrbookman
     

    본 칼럼은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과 함께 합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