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48
  • 2009-07-02
    이덕일의 옛 사람들의 독서법

  • [네이버 2006/04/18]
    class02-mrbookman

     책을 많이 읽는다고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지 않고 성공한 예를 찾기는 어렵다. 남성 우월주의 사회였던 조선에서 명성황후 민씨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다독(多讀)이었다. 조선 멸망 때 절명시(絶命詩) 를 남기고 자결했던 매천 황현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는 “명성왕후는 여러 학자들의 글과 사기『사기(史記)』에 통달해 여러 신하들의  장주(章奏:상소문과 보고문)를 친히 보았다. 그리고 그는 『팔가문초(八家文抄 : 당나라 8대 문장가의 글 모음)』도 읽기를 좋아하여 북경에서 새 책을 구입했다” 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옛 사람들은 성공을 위한 독서를 그리 높이 쳐주지 않았다. 예전에 성공을 위한 독서는 과거를 위한 독서를 뜻했다.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 ‘독서에서 구하는 것(有求讀書)’조에서 “구하는 바가 있어서 글을 읽는 자는 아무리 읽어도 소득이 없다. 그러므로 거자업(擧子業 과거를 위해 하는 공부)을 하는 자는 입술이 썩고 치아가 문드러질 지경에 이르러도 읽기를 멈추기만 하면 캄캄하므로 마치 소경이 희고 검은 것을 말하면서도 그 희고 검은 것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라고 과거 공부를 낮게 봤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형에 처해지면서 그 아들들도 과거길이 막히는 폐족(廢族)이 되었는데, 이에 실망한 아들들이 학문을 게을리 하자 「두 아들에게 보내는 글」을 통해 이렇게 당부했다.

     

     “폐족은 과거에 나가는 길이 기피될 뿐이지 성인(聖人)이 되는 길은 기피되지 않는다. 문장가가 되는 길이나 지식과 이치에 통달한 선비가 되는 길은 기피되지 않는다. 기피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폐단이 없어서 크게 낫기도 한 것이다.”

     

     옛 사람들이 독서의 진정한 목표로 삼은 것은 정약용이 말한 ‘성인(聖人)이 되는 길’이었다. 세속적인 성공의 길은 독서의 한 부분에 불과했다. 옛 사람들은 독서를 하지 않으면 사람이 짐승처럼 된다고 생각했다. 조선 후기의 학자 백호 윤휴는 ‘독서기 서문(讀書記序)’에서 “산속의 좁은 길이 잠깐 사용할 때는 길을 이루다가, 또 잠깐 사용하지 않으면 띠풀이 가득 차게 된다고 했는데 어찌 산속의 좁은 길만 그러하겠는가.” 라고 말했다. 띠풀이 가득한 산길이 길이 아니게 되듯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이 아닌 짐승과 같게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므로 독서의 자세는 단정해야 했다. 성호 이익은 ‘누워서 책읽는 독서대〔臥讀書架〕’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느 집에 가서 책상에 측면으로 세워진 판자가 있는 것을 보고 그 이유를 물었더니 누워서 글 읽는 책상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의 생각으로는, 글 읽을 적에 정신을 가다듬고 단정히 앉아도 오히려 잠이 오는 것을 막지 못하는데, 하물며 누운 책상이랴? 벌리고 앉거나 비스듬히 기대는 그 자세는 이미 글을 읽는 본의가 아니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독서는 괴로운 일만이 아니었다. 진정한 독서는 아름다운 일이었다. 다산 정약용의 ‘송파수작(松坡酬酢)’이란 시에 “천지에서 무슨 소리가 제일 맑을까/눈 덮인 산 깊은 곳의 글 읽는 소리로다/···(天地何聲第一淸/雪山深處讀書聲)” 라는 구절이 이를 말해준다.

     

     옛 사람들은 효과적인 독서법에 대한 글을 많이 남겼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내용이든 자신의 시각으로, 끝까지 강구하라는 것이었다.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몇 년 전부터 독서에 대해서 자못 깨달았는데, 헛되이 그냥 읽기만 하는 것은 하루에 천 번 백 번을 읽더라도 오히려 읽지 않은 것과 같다.” 라고 말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정약용은 “한 글자라도 모르는 곳이 나오면 모름지기 널리 고찰하고 세밀하게 연구하여 그 근본 뿌리를 깨달아 글 전체를 이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 서애(西厓) 유성룡의 독서법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독서법(讀書法)’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릇 독서할 적에는 주해(註解)를 먼저 보아서는 안 된다. 우선 경문(經文)을 반복해서 상세히 음미하여 자기 나름대로 새로운 뜻을 가질 때까지 기다린 후 주해를 참고해서 비교한다면, 경문의 뜻이 거의 환해져서 다른 해설에 가리지 않는다. 만약 먼저 주해를 본다면 그 주해의 말이 내 마음에 걸려 자기 자신의 새로운 뜻은 끝내 찾지 못할 것이다.”

     

     정약용과 유성룡의 독서법은 모든 독서인에게 효과적이다. 문제 풀기 전에 답이나 해설 먼저 보지 말라는 것이다. 결국 독서에 길이 있으나 그 길을 통해 무엇을 찾는 것은 자신이 할 일이다. 세속적인 성공의 길이든 성인이 되는 길이든.

     

     

     

    ldi-mrbookman이덕일│숭실대학교 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동북항일군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강단이라는 공간적 한계와 전문연구서라는 매체적 제약을 스스로 박차고 나와 열린 가슴으로 인식한 역사 연구의 성과를 대중과 함께 나누는 작업으로 한국사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그가 쓴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 2]는 한국사의 핵심 쟁점들을 명쾌하게 풀어내어 독자들의 폭발적 인기와 더불어 많은 논쟁과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살아있는 드라마라는 생각을 지닌 저자는 역사인물들의 전기에 남다른 정성을 쏟아 독특한 영역을 구축했다. 대표적인 역사인물서로 [누가 왕을 죽였는가 (개정판 제목 : 조선 왕 독살사건], [거칠 것이 없어라: 김종서 평전],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 [이덕일의 여인열전], [사도세자의 고백],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등이 있다. 현재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으로 있다.

     

    네이버 책 '이덕일'의 책 더 보기

     

    ending-mrbookman



    본 칼럼은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과 함께 합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