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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7-02
    백원근의 '베스트셀러는 배스트북인가?'

  • [네이버 2006/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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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시장의 이데올로기 베스트셀러

     

    베스트셀러는 당대인들의 정신적 풍속도를 보여주는 지표임과 동시에, 독서 대중들의 욕망의 성격을 함축한다. 예를 들어 개화기 시절 이인직의 <혈의 누>는 개화기적 근대사상에 대한 열망을, 1960년대 최인훈의 <광장>은 분단시대 지식인의 고뇌를, 1980년부터 5년간이나 베스트셀러 10위권에 머문 김홍신의 <인간시장>은 군사정권하의 암울한 시대 분위기에서 정의의 주먹으로 서민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1990년대 초반에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래  우리 것과 우리 문화에 대한 주눅든 관심이 고조되고, 동시에 주체성에 바탕을 둔 세계화 이데올로기가 이슈화되던 시기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제 베스트셀러는 국경을 넘어 글로벌화되는 양상으로 정착되고 있다. <해리포터> 시리즈,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다 빈치 코드> 등 동일한 시기에 같은 책이 세계 각국에서 ‘뜨는’ 현상은, 맥도날드 햄버거나 코카콜라와 다를 바 없는 소비적 문화상품으로서의 책의 성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독자의 공감을 얻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공감을 ‘얻게 된’ 책 말고도, 공감을 ‘만들어 내는’ 책도 적지 않다. 출판시장의 대량생산-대량광고-대량소비 시스템에 의해 인위적이고 치밀한 기획과 연출로 만들어진 책들이 상당하다는 얘기다. 여기서 상업적으로 만들어진 베스트셀러는 곧 독서 행위에 대한 근본적 문제를 제기한다.

     

     

    베스트셀러와 베스트북

     

    베스트셀러는 특정 시기에 상대적으로 많이 팔린 책들을 가리키는 말일 뿐 책에 대한 가치 평가는 배제되어 있다. 베스트셀러가 반드시 베스트북은 아니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처럼, 많이 팔린다고 해서 읽어봤더니 별로 볼 게 없는 책이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듯이, 시청률 높은 방송 프로그램이 그 수준도 높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거기에는 대중의 눈을 빼앗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 즉 질적 수준과 대중성의 문제는 별개의 것일 수밖에 없다. 베스트셀러의 지명도와 내용적 가치는 별개이며, 이는 ‘패션’이 유행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과 다르지 않다. 예를 들면, 일반 독자들의 시인 선호도에서 류시화는 항상 1위를 기록하지만 평론가 등 전문독자 조사에서는 아예 상위권 순위에 끼지 못한다. 그렇다면 대중들은 질 떨어지는 시만 좋아하는 셈인가. 바로 이 지점에 베스트셀러와 베스트북의 딜레마가 존재한다.

    하지만 베스트북의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많이 팔린 책들이 그렇지 않은 책들에 비해 높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러한 베스트셀러 기간이 길어져 두고두고 스테디셀러가 되었을 때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의 반열에 오를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이다. 최소한 당대에 크게 주목(어떤 의미로든)을 받거나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고 길이 남는 고전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책은 ‘지적 충동구매’가 작동하는 상품이다. 이를 통해 출판은 시대정신도 되고 산업도 된다. 산업은 위기론 속에서도 점차 거대화되고, 시대정신은 점차 사라지는 위약성 속에서 우리의 베스트셀러는 점점 ‘배꼽티를 입은 문화’로 바뀌어가고 있다.

     

    베스트셀러의 생산부터 소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몇 권의 베스트셀러 이외에는 거의 책을 읽지 않는 대다수 독자들의 현실(그렇기 때문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겠지만), 아니 생존을 위해 필요한 책 이외에는 아예 독서와 담을 쌓고 사는 것이 진짜 문제가 아닐까 싶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우리 국민 10명 중 4명은 1년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책맹(冊盲)들이다. 문화관광부 의뢰로 한국출판연구소가 발표해 왔던 <국민 독서실태 조사>를 보아도 베스트셀러 중심의 독서실태 경향은 예나 이제나 바뀌지 않고 있다. 기억에 남는 도서, 추천하고 싶은 도서, 도서구입시 고려 요인 등의 조사 항목들은 한결같이 시중의 베스트셀러 목록과 일치하여 '소비되는 독서' 경향을 여실히 보여준다.

     

     

    군중합창단식 독서에서 벗어나기

     

    오늘날처럼 정보 과잉의 지식기반 사회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넘쳐나는 지식정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지식 디자인 능력’이다. 이때 요구되는 독서법은 독자 스스로 편집하는 몽타주식 책읽기이다. 독자가 세계의 중심에 서서 시공간의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을 선택하는 과정부터 읽기의 방법, 책과 책 사이 또는 책과 세상과의 거리, 책이 말하는 바에 대한 감응과 비판 모두가 자신의 서가와 자기 생각 속에서 새롭게 정의되고 다시 편집되어야 한다. 창의력은 거기서부터 나온다.


    베스트셀러에만 빠지는 편식 독서, 소비되는 독서는 개인의 음색이 드러나지 않는 군중합창단의 독서와 같다. 음치일망정 꾸준히 연습하며 독창 무대를 준비하는 독서가 자신의 스타일을 만든다.


    독서는 장수의 비약이다. 인생은 짧아 경험을 제한하지만, 독서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인류문화의 진수로 우리를 이끌기 때문이다. 책이 넘쳐나는 시대에, 중요한 시간을 갉아먹는 영양가 없는 책을 안 읽는 것도 때로는 훌륭한 독서법이다. 좋은 책이란 새로운 생각과 자극을 주는 것이니, 읽어야 할 책은 늘 우리를 유혹한다. 그 유혹과 연애하는 것이 독서이다. 오늘의 독서는 가까운 미래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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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원근│현재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이며, 경희대 언론정보학부와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출판과 관련된 여러 조직과 모임에서 활동하는 한편, <출판저널>과 <문화통신>(일본) 등의 매체에 칼럼을 집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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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칼럼은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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