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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7-02
    이제는 양보다 질이다

  • [경향신문 2005-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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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Ⅰ-1 이제는 양보다 질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동네의 공립도서관이었다”고 말했다. 친구들이 학교에 간 동안 집에서 동화와 위인전을 빌려다 읽었던 지관순 학생(덕성여대 사학과)은 골든벨의 주인공으로 국민에게 희망을 주었다. ‘미쳐야 미친다’ ‘죽비소리’ 등 고전인문서를 베스트셀러로 만든 정민 한양대 교수는 수많은 책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읽은 내용을 반드시 파일과 메모로 남겨 독서의 생산성을 증명한다. ‘책 읽는 사람이 아름답다’는 문구가 담긴 독서캠페인 포스터의 주인공 안성기씨는 빼어난 소설의 심리묘사를 보면서 연기의 기본을 닦는다.

    지식정보시대를 맞아 독서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분야를 막론하고 성공한 사람의 뒤에는 책이 있다. 독자의 감소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지만 한국의 출판산업은 세계 10위권에 들 만큼 성장했다. 책 읽는 선비의 삶을 가장 훌륭한 것으로 대접했던 전통, ‘책 도둑은 도둑도 아니다’라는 책에 대한 존중, 한강의 기적과 기러기 아빠를 만들어낸 교육열 등 우리 국민의 정서는 책과 가깝다. 다양하고 자생적인 독서운동단체, 독서클럽, 독서교사들의 존재도 독서문화 향상에 희망과 기대를 갖도록 만든다.



    독서율은 상위, 독서질은 하위

    정확한 현실진단을 위해 문화관광부와 한국출판연구소가 1993년 ‘책의 해’ 이후 지난해까지 7차례 실시한 ‘국민독서실태조사’를 살펴본다.

    2004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한해동안 우리나라 성인 중(3,700명 표본조사) 책을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의 비율(독서율)은 76.3%이며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까지 포함해 연평균 독서량은 11권이다.

    독서율은 1990년대 수준을 아직 회복하지 못했지만 독서량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이 수치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더라도 빠지지 않는다. 독서율은 놀랍게도 스웨덴(81%)에 이어 두번째이다. 영국(75%), 독일(59%), 프랑스(57%), 미국(50.2%)보다 높고 유럽 15개국 평균(58%)을 훨씬 웃돈다. 월평균 독서율로 따지더라도 한국(54.5%), 중국(46.3%), 일본(50%) 등 동아시아 3개국 가운데 가장 높다.

    우리 국민이 이렇게 책을 많이 읽는다는 뜻인가. 수치의 함정이 있다. 독서율은 한 권이라도 책을 읽은 사람의 비율을 나타낸다. 이 때문에 독서의 질을 반영하지 못한다.

    인근 일본과 비교할 때 월평균 3권 이상 읽는 다독자 비율은 한국이 14.5%, 일본이 17.7%로 3.2%포인트 떨어진다. 연평균 도서관 이용률(24.7%)도 유럽 평균(29.8%)에 비해 낮다. 독서 선진국인 핀란드(67.8%)나 스웨덴(65.3%)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주로 읽는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과 거의 일치하고 교양서의 비율이 문학·실용서에 비해 떨어지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지난해 성인의 도서분야 선호도를 보면 일반소설(22.2%), 추리소설(6.4%), 종교(4.9%), 만화(3.7%), 무협·판타지(3.6%), 경제경영(3.6%), 재테크·부동산(3.4%) 순이다. 철학 역사 예술 과학 등 교양서가 설 자리가 별로 없다. 이 때문에 독서율, 독서량에 만족하기보다 책을 다양하고 꾸준하게 읽는 독서문화 개척이 필요하다. 어른들의 독서습관, 가족간의 독서대화가 어린이와 청소년의 독서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부분의 노력이 시급하다.



    교육과 독서의 이율배반

    학생들의 독서가 갈수록 줄어들고, 특히 학년이 올라갈수록 책을 안 읽는다는 사실은 우리 독서문화 가운데 가장 암울한 부분이다. 2004년 조사에서도 이 부분은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학생의 연간독서율은 1994년 이래 줄곧 떨어져 지난해 89%를 기록했다. 독서량 역시 연평균 11.8권으로 한 달에 한 권도 채 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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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수치조차 초등학생들의 독서에 힘입은 것이다. 초등학생이 연평균 19.4권을 읽는 데 비해 중학생이 되면 9.5권, 고등학생은 6.3권으로 독서량이 떨어진다. 아무리 입시에 시달린다고 하더라도 공부하는 학생이 교과서 이외에 한 달에 한 권도 책을 안 읽는다는 사실은 교육과 독서의 이율배반 관계를 증명한다.

    학생들 스스로 폭넓은 독서가 대학입시에 도움이 된다(74.6%)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 폭넓은 독서를 하지 못했다는 응답(84.8%)이 대부분이다. 대학생은 조사대상에서 빠져있지만 입시지옥보다 더 어려운 취업지옥을 벗어나고자 토플책과 고시책에 몰두하는 게 현실이다.

    이같은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움직임과 찬반논란도 이미 시작됐다.

    교육부가 2008년부터 교과별 독서활동을 평가하고 이를 대학입시에 반영하는 ‘독서이력철’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뒤 “사교육화된 독서교육을 공교육에 흡수해야 한다”는 찬성입장과 “또다른 과외를 부추기는 편법독서가 될 것”이라는 반대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2004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는 ‘적극 찬성’(21%)과 ‘찬성하는 편’(34.1%)이 과반수로 나타났지만 반대논리도 만만치 않은 형편이다.



    도서관이 더욱 가까워져야

    도서관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독서문화 성숙을 위해 한단계 발전한 것으로 분석된다. 성인들에게 독서장려방안을 물어본 결과 ‘공공도서관 증설 및 구비도서 확충’이 30.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2002년 같은 항목의 조사에서는 ‘대중매체를 통한 독서캠페인’이 29.9%로 가장 높았다.

    일시적인 캠페인보다는 문화인프라 구축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넓어진 것이다. 이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여서 학교도서관 이용률이 1994년 46.2%에서 10년 만에 70.7%로 높아졌다. 이같은 변화를 잘 활용하기 위해 도서관의 장서 및 사서교사를 충분히 확보해 바람직한 독서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

    공공도서관의 경우도 비슷한 과제를 안고 있다. 성인과 학생의 차이가 다소 있지만 공공도서관을 이용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로 ‘시간이 없다’는 것과 함께 ‘집에서 멀다’, ‘이용할 필요를 못느낀다’, ‘읽을 책이 없다’는 지적이 수위를 차지했다.

    지역문화거점으로서 공공도서관의 노력 여하에 따라 주5일 근무제 도입과 함께 문화적 여가를 보내려는 지역주민을 끌어들일 수 있는 여건이 무르익었다.

    한윤정기자 yjhan@kyunghyang.com


    기획자문: 이권우 도서평론가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 이용훈 한국도서관협회 기획부장 · 김종성 계명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 안찬수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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