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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7-02
    교양인의 조건

  • [경향신문 2005-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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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Ⅱ-5. 교양인의 조건

    “첨단지식을 갖추려면 책을 읽어라.”


    최근 각 대학들이 책읽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보화시대에 필요한 상상력, 창의력, 비판적 사고력, 종합적 판단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고전을 읽는 것이 지름길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됐기 때문이다. 사회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전문지식의 수명이 짧아짐에 따라 좁고 깊은 전공교육을 시키기보다 스스로 그런 지식을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기초·교양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분과학문간 경계를 뛰어넘는 공동연구의 확대도 폭넓은 독서의 필요성을 부채질한다. 2000년대 학부제 도입과 함께 강화되기 시작한 이같은 경향이 올들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서울대는 지난 2월 권장도서 100선을 선정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1993년에도 200선을 발표한 적이 있으나 이번 선정이 주목받는 것은 단순히 발표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읽히기 위한 다양한 후속조치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전공교수들이 각 권별 핵심사항을 설명하는 해제집을 발간하고 과학이나 동양철학처럼 읽기 어려운 고전은 따로 선집을 만든다.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 교수들이 학생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한편 중앙도서관에는 권장도서실이 따로 만들어진다.


    이와 함께 교수학습방법 연구개발을 담당한 기초교육원을 중심으로 권장도서 목록을 커리큘럼에 반영하는 작업도 추진된다. ‘동양의 고전’ ‘서양철학의 이해’ ‘한국현대문학과 사상’ 등 기존 교양과목에다 책읽기를 접목시키는 동시에 ‘과학고전읽기’ 등 명저읽기를 핵심으로 하는 신규 교과목을 개발한다. 여정성 교무부처장은 “기초교육 강화의 핵심과제로 권장도서목록이 마련됐다”며 “너무 어렵다는 지적도 있지만 다양한 정착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세대는 이번 학기부터 1학년 필수과목으로 주당 2시간 1학점짜리 ‘명저읽기’ 과정을 만들었다. 이 수업은 각반을 20명 단위로 편성해 매주 1권씩 명저를 읽히고 토론식으로 진행된다. 지난해 개설준비과정에서 4년전 만들었던 명저 200선을 바탕으로 전공별 권장도서와 핵심내용을 담은 자체 매뉴얼을 만들어 담당교수들에게 제공했다. 전공 및 진로탐색을 위한 1학년 교육 강화를 목표로 내건 연세대는 다른 과목에서도 학기당 1~2권의 고전을 읽도록 권장해 1학년때 최소한 30권의 책을 읽도록 교육체제를 변화시켜 나갈 계획이다.


    -말하기·글쓰기와 연계-


    강원대와 덕성여대는 일찌감치 독서교육을 도입해 주목을 받았다. 강원대는 2001년 신입생부터 영어·컴퓨터·독서 가운데 한가지를 선택, 졸업자격인증을 받도록 의무화했다. 이중 독서인증제의 경우 졸업 전까지 40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 컴퓨터로 독서인증시스템에 독후감을 입력하고 문제은행의 객관식 문제풀이에 합격하면 독서결과를 인증받는다. 소만섭 교무연구처 부처장은 “올해 첫 졸업생 가운데 독서인증제를 선택한 학생은 21명밖에 안됐지만 내년 졸업생부터는 세가지 인증제 가운데 두가지를 선택하도록 했기 때문에 독서인증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덕성여대는 교양독서세미나를 운영하고 있다. 1년간 두 과목을 수강하도록 돼있으며 전임교원 14명, 시간강사 14명 등 28명이 정원 20명의 80여개 수업을 개설한다. 학생들은 매주 한권씩 학기당 14권의 명저를 읽고, 수업시간마다 A4 한장 분량의 독후감을 제출하면서 토론에 참여한다.


    한편 책읽기와 연계된 말하기·글쓰기 교육을 강화하는 대학도 크게 늘어났다. 말하기와 글쓰기를 통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학문뿐 아니라 사회생활의 기본인데 이를 위해 책읽기가 필수적으로 채택된다. 고려대는 지난해부터 시행중인 교양과목 신교육과정에 ‘사고와 표현’을 개설했다. 두 학기동안 6시간 4학점제로 운영되는 이 과목은 동서양의 고전 및 다양한 읽기자료를 글쓰기나 토론과 연계시킨다. 1학기때는 전공에 상관없이 일반적인 읽기와 커뮤니케이션 수업을 진행하고 2학기때는 인문·사회·자연과학 영역별로 심화된 말하기·글쓰기 훈련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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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인증제 도입도-


    성균관대는 ‘글쓰기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영역을 올해부터 도입했다. ‘글쓰기 기초와 실제’ ‘학술적 글쓰기’ ‘과학기술문서 작성 및 발표’ ‘스피치와 토론’ 등 4개 과목으로 나눠 새로 선발된 전임교원 11명이 가르치고 있다. 포항공대도 지난해부터 전임교원 5명을 확보해 ‘글쓰기’ 교육을 강화했다. 교양필수 6개 과목 중 하나인 글쓰기는 한 수업당 22명으로 인원을 제한, 충분한 피드백이 이뤄지도록 했다. 올 2학기부터는 인문사회학적 소양을 토대로 자기표현능력을 향상시키는 ‘토론연습’을 글쓰기에 포함시켜 책읽기와 토론을 강화해나갈 계획이다.


    이처럼 책읽기를 중심으로 교양교육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외국에서도 활발하다. 최근 하버드대가 도입한 교양교육(Harvard College Course)은 비판적 능력의 증진, 철저한 독서, 논리적 토론, 설명적 글쓰기, 구두표현 등을 강조하면서 학문간 경계를 넘는 교과목의 도입을 통해 전공교육으로 가는 통로로서 전문화와 보편화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민경찬 대학교양교육협의회장(연세대 학부대학장)은 “주도적 문제해결능력, 도덕적 책임감 등 새로운 시대의 가치에 맞춰 교양교육이 개편되는 추세”라며 “인생의 철학과 진로를 제시하는 책읽기가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




    현대사회 지식팽창

    다양한 책읽기 필수

    서울대 기초교육원장 인현진교수


    지난 13~15일 서울대에서는 ‘한국의 대학, 기초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국제회의가 열렸다. 서울대 기초교육원이 처음 주최한 이 행사에서는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 등 국내 주요대학들의 기초교육 운영방향과 함께 미국·중국·일본의 사례도 발표됐다. 임현진 서울대 기초교육원장(사회학과 교수)으로부터 기초교육의 새로운 변화와 책읽기의 중요성에 대해 들어본다.


    -기초교육이란 무슨 뜻인가.

    “과거에는 전공교육과 대비되는 개념에서 교양교육이란 말을 썼다. 교양은 전공 이외의 영역이란 의미가 강했다. 반면 기초교육은 전공으로 들어가기 전에 폭넓은 지식을 섭렵하는 과정을 말한다. 전공탐색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지식의 성격은 여타 학문분야로 열려있기 때문에 폐쇄적 전공교육만으로는 제대로 된 지식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즉 깊이 들어가려면 먼저 넓게 봐야 한다. 서구에서 기초교육은 일반(general)교육, 인문(liberal)교육으로 불리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과도기 상태라서 기초교육, 교양교육, 기초교양교육, 교양기초교육 등 다양한 용어가 혼용되고 있다.”


    -책읽기는 기초교육에 어떻게 반영되는가.

    “여러 대학의 사례들에서 책읽기가 강화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폭넓은 지식을 얻기 위한 핵심적 매체이기 때문이다. 서울대의 경우도 권장도서목록이 ‘학문의 기초’ ‘핵심교양’ ‘일반교양’ 등 세가지 교양교육과정에 반영되도록 할 예정이다. 특히 ‘핵심교양’은 ‘문학과 예술’ ‘역사와 철학’ ‘사회와 이념’ ‘자연의 이해’ 등 4개 분야에 걸쳐 포괄적이고 연계적인 주제를 다루는 교과목들로 구성돼 있는데 다양한 분야의 독서가 필수적이다.”


    -향후 기초교육원의 계획은 무엇인가.

    “서울대, 나아가 한국대학에 맞는 기초교육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기초교육의 관건은 급격히 발전하고 팽창하는 지식을 적극 수용하고 창의적으로 탐색할 수 있는 열린 태도와 내재적 동기,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달려있다.”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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