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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7-02
    독서현장탐방 - 온북티브이

  • [경향신문 200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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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Ⅳ 독서현장탐방
    13. 온북티브이


    난감했다. 남과 북의 문인들이 해방 이후 60년 만에 처음으로 만나는 역사적 현장을 리포트하기로 약속하고 평양으로 향했는데, 카메라 앞에 제대로 서지 못했던 것이다. 핑계는 얼마든지 댈 수 있었다. 출발하기 삼일 전에야 리포터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은 데다 방송이라면 나는 그야말로 아마추어였다. 게다가 나는 이번 대회 남측 부대변인까지 맡고 있었다. 북한에서 나는 카메라 앞에 제대로 설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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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남북작가대회 취재차 방문한 온북티브이 특별취재팀이 인민문화궁전 앞에서 소설가 김원일씨(오른쪽)를 인터뷰하고 있다.


    다른 참가자들이 북한에서 찍은 사진을 돌려보며 평양, 백두산, 묘향산 등지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7월20~25일)의 의미를 정돈하고 있을 때, 나는 영상기록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를 놓고 내심 고민하고 있었다. 나를 리포터로 추천한 민족문학작가회의 실무자들은 물론이고, 이번 대회 공식 영상기록사, 그러니까 나와 함께 북한을 다녀온 온북티브이(onbook.tv) 피디들과도 만나기가 두려웠다. 그때 온북티브이 대표 조철현씨(45)가 대안을 제시했다. 내레이션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녹음은 북한을 다녀온 지 한달 뒤에야 진행되었다. 그러나 내가 쓴 글을 읽는 것도 쉽지 않았다. 피디는 “다시!”를 연발했다. 앞이 캄캄했다. 편집이 거의 다 된 화면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지난 9월 초. 온북티브 조사장도 이날 처음 글과 화면을 접하는 것이었다. 다큐멘터리 ‘분단문학의 밤을 넘어-모국어의 휴전선을 지우다’(가제)는 백두산 천지를 향하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곧 화면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50분에 걸친 시사회가 끝나자 조사장은 “고생 많으셨다. 정말 감동적이다”라며 손뼉을 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출판전문방송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런데 지난 9월3일 개국 2주년을 맞았다는 것이다.


    그 사이 온북티브이는 고 조태일 시인 추모특집(9월2일 광주MBC 방영), 민족문학작가회의 30년사 등을 제작했고, 문예진흥원이 주관하는 원로 예술인 영상채록 사업에 참여했다. CBS 스카이 채널, 현대 기아차 사내방송, 알라딘과 같은 웹서점, 서초 케이블티브이 등 전국 10개 케이블방송에 매주 ‘금주의 신간’ 프로그램을 무료로 공급해왔다. 이번 달부터는 전국 93개 케이블채널에서 온북티브이가 제작 공급하는 ‘금주의 신간’을 만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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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북티브의 조철현 대표PD가 전남 화순 쌍봉사 인근 이불재에서 소설가 정찬주씨를 인터뷰하는 모습.

    온북티브이라는 출판전문방송이 어느날 갑자기 출현한 것은 아니다. 온북티브이는 11년 전에 등장한 여산통신의 ‘아들’이다. 1994년, 당시 젊은 작가이자 방송 저널리스트였던 조철현씨는 출판사와 일간지 출판담당 기자들에게 난데없는, 그러나 그럴 듯한 제안을 한다. 우체국 시스템보다 빠르고 안전하게 출판사와 기자 사이를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일간지뿐 아니라 잡지, 사보, 방송사를 찾아다니며 “서평용 책은 얼마든지 전해드릴 테니 책 소개 코너를 늘려달라”고 설득하고 다녔다. 그때 조사장의 재산은 오토바이 두 대와 출판계를 응원하려는 열정이 전부였다. 그 무렵 조사장은 평소 호형호제하던 KBS 라디오국 김선옥 부장을 찾아갔다. “공영방송이라면 출판 관련 프로그램을 적어도 한 시간 정도는 할애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미리 준비한 기획서와 데모 테이프를 내놓았다. 그것이 지금도 방송되고 있는 ‘책마을 산책’의 첫 단추였다.


    오토바이 두 대는 소형 봉고차로 변했고, 출판사뿐 아니라 기업체들에도 새로운 제안을 했다. 기업체 홍보실을 대신해 보도 자료를 언론사에 돌리겠다는 것이었다. 출판사들에 대한 서비스도 확대했다. 가판신문을 배달받아 출판관련 기사를 출판사에 제공했다. 기획이나 홍보, 마케팅에 대해 물어오는 신생 출판사도 있었다. 여산통신은 단순한 ‘퀵서비스’가 아니었다.


    그동안 몇 번의 위기가 있었다. 1990년대 말 불어닥친 IMF 한파는 기초체력이 부실한 출판계를 무너뜨렸다. 그 여파는 시차없이 여산통신을 강타했다. 곧이어 배송료 인하를 무기로 들고 나온 경쟁사가 등장했다. 책과 독자를 연결하는 홍보와 광고 환경도 빠른 속도로 변했다. 일간지를 중심으로 한 기사와 광고의 위력이 예전 같지 않았다. 새로운 활로가 절실했다.


    조사장은 낚시와 바둑, 만화까지 전문방송이 있는데 왜 출판계에는 전문방송이 없을까라고 반문하며 2003년 9월 출판전문방송 온북티브이를 설립했다. “텍스트와 사진에만 의존하던 서지 정보와 서평 정보를 영상으로 담아내 영상세대들에게 적극 소개해야 출판시장이 활성화할 것”이라고 믿는 그는 최근 V메일 마케팅 기법을 널리 알리고 있다. 수신자의 컴퓨터에 부담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책 관련 정보를 동영상이나 e메일로 제공하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조사장은 사업가 같지 않다. 돈에 대한 관심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금주의 신간’ 프로그램도 무료로 공급하고 있다(물론 출판사로부터 최소한의 제작비를 협찬받는다). 곧 완성되는 남북작가회의 공식 영상기록에 대해서도 사전에 ‘돈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는 일을 먼저 본다. 그는 남들보다 먼저 ‘틈새’를 생각하고, 남들보다 많이 일한다. 하지만 참신한 아이템만으로는 틈새시장을 공략하지 못한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놓지 못하면 틈새는 틈새에 머물고 만다. 여산통신도 그랬지만, 온북티브이 역시 틈새를 또하나의 광장으로 만들어놓을 것이다.


    온북티브이를 출판전문방송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하지만 조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다. 누군가 시작했어야 할 일이다.” 온북(onbook)의 ‘온’은 영어 전치사이기도 하지만, 우리말로는 모든, 온전한, 따뜻한이란 의미를 갖는다. 조사장의 책에 대한 사랑, 출판계에 대한 애정, 독자들에 대한 믿음이 ‘온북’에 그대로 담겨 있는 것이다.


    평양과 백두산, 묘향산에서 온북티브이는 누구보다 많은 땀을 흘렸다. 남과 북의 문인이 60년 만에 처음으로 서로 얼싸안는 드라마를 기록한 ‘분단문학의 밤을 넘어’는 어쩌면 오는 10월 독일로 날아갈지 모른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행사장에서 마지막 분단의 현장 한반도가 세계 평화를 위한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세계인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문재 시인·추계예대 문창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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