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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09
    [분서] 구속받지 않는 ‘나만의 삶’ 안될까

  • [책읽는 경향] 분서
     정여울 | 문학평론가

     

    ㆍ구속받지 않는 ‘나만의 삶’ 안될까

    ▲ 이지·홍익출판사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그 몸이 남에게 구속된다. 배울 때는 스승에게 구속되고, 관직에 들어가면 관직에 구속된다. 오면 맞이하고, 가면 전송하고, 분금을 내어 술자리를 마련하고, 축금을 내어 장수를 축하한다. 털끝만큼이라도 조심하지 않아 그들의 환심을 잃으면 곧장 화가 닥친다. 그 구속은 관 속에 들어가 땅에 묻힐 때까지도 끝나지 않고 더욱 고통스럽게 구속한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출가하여 사방으로 떠돌지언정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 그러나 출가하여 천하를 주유해도, 그 주유하는 곳의 고관대작들이 나를 구속했다. 지방관리가 처음 부임할 때 내게 물품과 서찰을 보내왔다. … 이리저리 궁리 끝에 ‘유우객자(流寓客子)’라는 글자를 써서 화답했다. … 흘러다니며 묵는다는 뜻의 유우(流寓)라는 말은 집을 짓고 거기서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땅을 갈고 씨 뿌려서 거기서 나는 것을 먹으면, 구속을 안 받으려야 안 받을 수 없다. 그래서 객자(客子)라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여로에 잠시 머물 듯하는 것이지 정말로 머물러 사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는 것이다. (286~289쪽)


    나를 아는 모두가 부르는 내 이름이 있다. 가끔 그 이름이 부담스럽다. 그들이 부르는 이름과 그들이 바라보는 시선의 그물 속에서, 나는 오직 ‘나답게’ 행동해야 할 것만 같다. 타인의 시선에 길들여지지 않은, 내가 창조한 나만의 이름을 만들 수는 없을까. 중국의 철학자 이지는 남에게 불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에게 불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유우객자’라 지었다. 어디에도 문패를 달지 않고,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머물지만 정착하지 않는 자. 스펙 쌓기의 압박, 재테크의 부담감, 내 집 마련의 설움을 잠시라도 잊고, 인맥이나 학맥이 아닌 내 꿈과 내 사랑의 빛깔에 가장 잘 어울리는 나만의 이름을 가질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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