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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13
    [연기, 흙 혹은 먹이] 누군가에 기억되는한 인간의 죽음, 의미

  • 경향신문은 '책 읽는 경향'을 통해 매일 아침 독자들에게 책 한 권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4년째 쉬지 않고 내보내고 있습니다. 일간지 1면에 날마다 서평 형태의 칼럼을 싣는다는 것은 신문사로선 매우 이례적인 기획일 뿐더러 사회적으로도 무척 의미 있는 일입니다. 7월과 8월 두 달 동안 '책읽는사회'가 '책 읽는 경향'을 맡아 책 소갯글을 주선하기로 하였습니다.



    연기, 흙 혹은 먹이 | 마이조 오타로 · 학산문화사


    누군가에 기억되는한 인간의 죽음, 의미
    ~서진 | 소설가~
    “인간은 죽으면 어차피 연기나 흙, 혹은 먹이죠.” “무슨 의미?” “불에 타서 연기가 되거나, 매장되어 흙이 되거나, 자칫하면 동물에게 먹혀버리는 겁니다.” “그건 당신의 생각?” “할머니가 죽기 전에 한 말이죠.” “당신은 그래서 괴로워하고 있군요.” “나나 다른 사람도 어차피 죽으면 연기나 흙이나 먹이예요. 살아 있다는 건 소용없어요. 살아 있건 죽었건 다를 게 없는 거죠. 나도 지로도 마루오도 살아 있는 거야 좋겠지만.” “저기, 나츠카와씨, 인간은 죽으면 누군가의 추억이 되는 겁니다. 인간은 죽은 다음에도 살아 있었던 증거를 다양한 형태로 반드시 남기는 거죠.” 나는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다. 눈물이 넘쳐흘러 멈추지를 않는다. 커다란 울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숨쉬기가 괴로워진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렛츠 고, 시로. “흐흑. … 그럼 살아 있는 의미가 있단 얘긴가요?” “있어요. 당신이 모를 뿐이죠.” (385~386쪽)

    어려운 이야기를 어렵게 풀어내는 것보다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복면 작가 마이조 오타로의 데뷔작은 언뜻 보면 어머니가 피해자가 된 사건을 파헤치는 시로의 탐정수사극처럼 보인다. 요즘 유행하는 라이트 노블의 외형을 답습하는 듯, 가볍고 속도감 있는 문체로 독서의 경험을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그러나 결국 이 소설은 폭력으로 상처 입은 가족이 어떻게 그 상처를 극복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고, 인간의 죽음과 존엄성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건이 해결되고 난 뒤에 나누는 주인공과 심리치료사의 대화는 소설의 제목에 대한 의미와 심도 있는 주제를 명쾌하게 드러내준다.


    서진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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