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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15
    [어젯밤] 번역소설에서 문장의 맛이라니!

  • 경향신문은 '책 읽는 경향'을 통해 매일 아침 독자들에게 책 한 권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4년째 쉬지 않고 내보내고 있습니다. 일간지 1면에 날마다 서평 형태의 칼럼을 싣는다는 것은 신문사로선 매우 이례적인 기획일 뿐더러 사회적으로도 무척 의미 있는 일입니다. 7월과 8월 두 달 동안 '책읽는사회'가 '책 읽는 경향'을 맡아 책 소갯글을 주선하기로 하였습니다.



    어젯밤 | 제임스 설터 · 마음산책


    번역소설에서 문장의 맛이라니!
    ~백가흠 | 소설가~
    필립은 6월 어느 날 아델과 결혼했다.

    구름이 끼고 바람이 불다가 나중에 해가 나왔다. 아델은 오래 전에 결혼한 적이 있었지만 다시 흰색을 입었다.

    굽 낮은 하얀 구두에 엉덩이가 달라붙는 긴 하얀 치마, 얇게 비치는 흰 블라우스를 입고 그 안에 흰 브래지어를 했다. 목에는 담수 진주 목걸이를 걸었다.

    결혼식은 그녀의 집에서 했다. 이혼하면서 받은 집이었다. 우정을 굳게 믿는 그녀였고 친구들이 모두 참석했다. 집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 아델은, 그녀는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필립, 당신께 나를 드립니다. 당신의 아내로서 모든 것을……. 뒤에는 들러리로 아델의 아들이 약간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11쪽)


    <어젯밤>은 국내 처음 소개된 제임스 설터의 단편 소설집이다. 모두 열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소설의 수준과 역량은 모두 놀랍기만 하다. 미국의 최고 단편작가인 레이먼드 카버의 그것과는 또 다르다.

    취향을 묻는다면 이제부턴 제임스 설터의 편에 서겠다. 어째서 이제껏 그의 존재를 몰랐던 것인지.

    그가 까발리는 위선, 드러내는 솔직함은 단문과 단문 사이, 긴 여백을 남긴다.

    한 줄, 한 줄, 군더더기 없는 압축된 문장의 맛, 적막한 밤, 여운이 길다.

    번역소설에서 문장의 맛이라니! 이 생소한 기억은 오래도록 남을 듯하다. 이는 ‘어제’와 ‘마지막’의 단어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질감, 지난밤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여백 안에 가득하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다섯 번째로 실려 있는 ‘포기’가 가장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백가흠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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