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98
  • 2010-08-03
    [군인은 축음기를 어떻게 수리하는가] 지구 저편의 낯선 삶까지도 사랑하게 하다

  • 경향신문은 '책 읽는 경향'을 통해 매일 아침 독자들에게 책 한 권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4년째 쉬지 않고 내보내고 있습니다. 일간지 1면에 날마다 서평 형태의 칼럼을 싣는다는 것은 신문사로선 매우 이례적인 기획일 뿐더러 사회적으로도 무척 의미 있는 일입니다. 7월과 8월 두 달 동안 '책읽는사회'가 '책 읽는 경향'을 맡아 책 소갯글을 주선하기로 하였습니다.



    군인은 축음기를 어떻게 수리하는가 | 사샤 스타니시치 · 낭기열라


    지구 저편의 낯선 삶까지도 사랑하게 하다
    ~인진혜 | 도서출판 띠 대표~
    나는 앞으로 10년 동안 기억하는 일을 그만두겠다고 약속하고 싶었지만, 카타리나 할머니는 잊는 것을 반대하셨어. 할머니에게 과거란 개똥지빠귀들이 지저귀고, 이웃 아낙네들도 재잘거리고, 누구나 우물에서 커피를 끓여 마실 물을 퍼올 수 있고, 슬라브코 할아버지와 친구들이 숨바꼭질을 하던 정원이 있는 여름 별장이야.

    그리고 현재는 그 여름 별장에서 멀리 데려가고, 탱크의 캐터필러 밑에서 흐느끼고, 자욱한 연기 냄새가 나고, 말들이 도살되는 길이지. 뒷자리에 있던 할머니가 내게 속삭이셨어. 사람은 둘 다 기억해야만 한단다. 모든 것이 좋았던 시절과 아무것도 좋지 않은 시절 모두를 말이야. (177쪽)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비셰그라드. 베오그라드. 한 번도 가본 적 없고 앞으로 가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작가의 이름을 발음할 때마다 그 낯섦에 혀가 꼬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꼬마 이야기꾼 알렉산다르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으로 정신없이 빠져든다.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마을의 모든 것이 좋았던 시절과 아무것도 좋지 않았던 시절의 그 이야기에, 그 사랑스러운 흥겨움과 뻐근한 아픔에, 많이 웃고 많이 운다.

    좋은 이야기란 이런 거구나. 지구 저편의 낯선 삶까지도, 그 헤아릴 수 없는 고통까지도, 상상하게 하고 아파하게 하고 품게 하고 (바라건대) 사랑하게 하는구나.


    인진혜 | 도서출판 띠 대표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