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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8-03
    [부활] ‘나’의 치명적 과오에 대한 치열한 물음

  • 경향신문은 '책 읽는 경향'을 통해 매일 아침 독자들에게 책 한 권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4년째 쉬지 않고 내보내고 있습니다. 일간지 1면에 날마다 서평 형태의 칼럼을 싣는다는 것은 신문사로선 매우 이례적인 기획일 뿐더러 사회적으로도 무척 의미 있는 일입니다. 7월과 8월 두 달 동안 '책읽는사회'가 '책 읽는 경향'을 맡아 책 소갯글을 주선하기로 하였습니다.



    부활 | 톨스토이 · 민음사


    ‘나’의 치명적 과오에 대한 치열한 물음
    ~김봉군 | 가톨릭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호송병들과 함께 한참 동안을 걸어 지친 마슬로바가 지방 재판소 가까이 왔을 무렵, 그녀를 처음 유혹한 장본인이며 그녀의 양모인 여지주의 조카,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네흘류도프 공작은 아직도 스프링이 좋고 높직한 침대 위에서 푹신푹신한 깃털 이불에 파묻혀 누워 있었다. 그는 눈을 한곳에 못박은 채 오늘 해야 할 일과 어제 있었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모두들 자기가 그 집 딸과 결혼하리라 여기고 있는 유복한 명문가 코르차긴씨네 집에서 보낸 어젯밤의 일을 되새기며 한숨을 내쉬고는 피우고 난 담배를 버렸다. (1권 24~25쪽)


    ‘네가 건강하므로 내가 병든 것은 아니다. 네가 공부를 잘하므로 내가 공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네가 부자이므로 내가 가난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만약 나로 인하여 누군가가 비참해진 것이라면, 나는 어찌 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톨스토이는 71세 때 쓴 <부활>에서 ‘네’가 아닌 ‘나’의 치명적인 과오와 망각이 빚은 죄악에 대해 치열하게 묻고 있다. 자기가 유린하고 까맣게 잊어버린 여인 마슬로바(카추샤), 그녀를 심판하는 자리에 앉아서야 소스라치게 놀라는 네흘류도프 공작은 19세기 말 러시아의 피해자와 가해자임에 그치지 않는다. 특히 네흘류도프 공작은 전 세계의 우리 모두요, ‘나’다. 우리는 지금 성형수술 열풍에 휩쓸려 있다. 정작 시급히 성형해야 할 것은 ‘나’의 마음이요, 영혼이다. 톨스토이는 검사, 재판관, 사제 등의 오만과 위선에 찬 죄악상을 차분한 어조로 고발한다. 그럼에도 그의 어조에는 냉소나 증오, 저주의 기미가 없다. 네흘류도프 공작으로 하여금 실천적 참회와 참사랑의 길을 가게 한다. ‘부활’은 ‘참회록’ 한 권 없는 우리 정신사의 거울이요, 영적 혁명의 길잡이다.


    김봉군 | 가톨릭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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