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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8-18
    [나무의 철학] 나무를 통한 넓고 깊은 통찰

  • 경향신문은 '책 읽는 경향'을 통해 매일 아침 독자들에게 책 한 권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4년째 쉬지 않고 내보내고 있습니다. 일간지 1면에 날마다 서평 형태의 칼럼을 싣는다는 것은 신문사로선 매우 이례적인 기획일 뿐더러 사회적으로도 무척 의미 있는 일입니다. 7월과 8월 두 달 동안 '책읽는사회'가 '책 읽는 경향'을 맡아 책 소갯글을 주선하기로 하였습니다.



    나무의 철학 | 로베르 뒤마 · 동문


    나무를 통한 넓고 깊은 통찰
    ~남송우 | 부경대 교수(국어국문학)~
    철학자는 나무의 오래된 기능이 보전하고 있는 언어에 주의 깊게 귀기울이는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말의 나무는 나무의 말을 축적한다. 나무는 기록하고 새기고 서고에 보관하는 재료로서의 역할을 곧바로 떠올리게 한다. 글·종이·책은 그렇듯 잊혀지고 추월된 나무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증언하고 있다 (71쪽)

    나무는 철학자에게 데카르트의 회의적인 나무보다 훨씬 타당한 구체적인 모형을 실현하여 보여준다. 변함없는 동시에 별나게 흔들리는 그 존재는 인간의 정신에 일관된 다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정신은 그에게 의지하여 자신을 추정한다고 해서 수치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342쪽)


    나무는 지상에 존재하는 것들 중 인간을 가장 많이 닮았다. 이는 뿌리를 땅에 내리고 천상을 지향하는 형상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런 형상을 지닌 나무를 로베르 뒤마는 상징으로서의 나무, 유추의 저장고로서의 나무, 논리의 도구로서의 나무, 탐사되는 사유대상으로서의 나무, 존재로서의 나무, 정치 속의 나무, 회화 속의 나무 군으로 펼쳐진 사유의 숲을 오랫동안 거닐고 있다. 일곱 군으로 나눠진 사유의 맥이 완벽한 하나의 산맥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무를 통한 그의 통찰은 넓고 깊다. 이러한 사유의 폭과 넓이는 뒤마가 말한 “글을 쓰기 위해 이용하는 종이가 적어도 그것을 만들어 냈던 나무와 같은 가치를 가지기를 바랄 뿐”이라는 열망의 결과로 보인다. 그의 이런 열망의 산물을 읽으면서, 저술가들이 어떤 자세로 글을 써야 하는지를 다시금 생각했다. 나무의 생명을 받아 태어나는 책이 나무 이상의 생명성을 이어가지 못한다면, 그 책이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남송우 | 부경대 교수(국어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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