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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8-23
    [간송 전형필] 멋지게 쓸 줄 아는 부자

  • 경향신문은 '책 읽는 경향'을 통해 매일 아침 독자들에게 책 한 권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4년째 쉬지 않고 내보내고 있습니다. 일간지 1면에 날마다 서평 형태의 칼럼을 싣는다는 것은 신문사로선 매우 이례적인 기획일 뿐더러 사회적으로도 무척 의미 있는 일입니다. 7월과 8월 두 달 동안 '책읽는사회'가 '책 읽는 경향'을 맡아 책 소갯글을 주선하기로 하였습니다.



    간송 전형필 | 이충렬 · 김영사


    멋지게 쓸 줄 아는 부자
    ~이종화 | 前 진해기적의도서관 관장~
    서화나 골동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자신의 취향보다는 그것이 이 땅에 꼭 남아야 하는지 아니면 포기해도 좋을지 먼저 생각했다. 그래서 숙고는 하지만 장고는 하지 않았고, 때문에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 나타났을 때 놓친 적이 없다. (26쪽)

    “선생께서 천학매병보다 더 좋은 청자를 저에게 주신다면 그 대가는 시세대로 드리는 동시에 천학매병은 제가 치른 값에 드리겠습니다.” 며칠 만에 벌 수 있는 기와집 스무 채 값에도 흔들림이 없는 전형필의 태도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어 무라카미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젊은 분이 대단하십니다. 제가 졌습니다.” 무라카미는 청년 전형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33쪽)


    ‘훈민정음 해례본’이라든가 ‘천학매병’ 등 국보급 문화재를 많이 보유한 간송미술관의 설립자 전형필은 돈을 아주 멋있게, 가치 있게 쓴 부자다. 그는 식민지 시대에 일본인들이 마구잡이로 반출해가는 우리 문화재를 이 땅에 남도록 지키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가 고서, 서화, 청자, 백자, 불구, 와당 등 수많은 작품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은 소장자가 요구하는 가격을 깎지 않고 좋은 유물은 오히려 호가보다 돈을 얹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우리 문화재가 일본으로 팔려 가는 것을 막았던 것이다.

    요즘도 부자는 많다. 그러나 돈을 잘 쓸 줄 아는 멋있는 부자는 드물다. 이 때문에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일본이 빼앗으려고 한 민족의 자긍심, 즉 우리 문화재를 지키려 했던 간송의 돈 쓰는 품새가 더욱 멋있다. 100여점에 이르는 국보급 문화재의 사진, 그것들을 구입하는 과정에 얽힌 비화는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종화 | 前 진해기적의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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