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소식 > 전체
  • 4306
  • 2009-05-06
    [시민의소리 2007-12-04] “물주고 가꾼 덕에 배꽃향기 그득합니다

  • [시민의소리 2007-12-04]
    “물주고 가꾼 덕에 배꽃향기 그득합니다”
    [공동체가 희망이다] 전남나주 ‘배꽃’ 작은 도서관

    ▶ '배꽃' 도서관에는 어느 누구도 "조용히해라!"고 혼내는 이가 없다

    경비실, 승강기 옆에 작은 서가로 출발해
    2만4천여권 장서에 컴퓨터, 홈시어터까지


    매일같이 찾아오는 개구쟁이 녀석이 보던 책을 던져두고 대뜸 탁자 위로 올라선다. 슈퍼맨을 흉내 내는 것일까, 스파이더맨일까? 팔을 가슴 앞으로 쭉 내뻗더니 탁자 아래로 ‘폴짝’ 뛰어내린다. 저쪽 꼬마 아가씨 둘은 오늘도 넓은 공간 책장 사이에 요리조리 숨어 술래잡기를 하느라 구슬땀을 흘린다.

    여느 ‘도서관’이라면 침 꼴딱 삼키는 소리까지 들릴 듯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겠지만 이곳 ‘배꽃’ 도서관에는 어느 누구도 “조용히 해라!”라고 혼내는 이가 없다.

    “이렇게라도 자주 온다면 나중엔 어쩔 수 없이 책과 친구가 되겠지요.” 신수용 관장의 말 한마디 속에 시골 할배같은 후덕함이 느껴진다.

    정해진 규범과 공간 속에서 이뤄지는 책읽기 훈련은 책읽기가 지닌 순수한 즐거움을 빼앗는 일일 것이다. 책읽는 습관을 기르기 위해들인 노력과 시간이 결코 아이들이 갖는 행복함과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편하게 앉거나 누워서 혹은 친구와 등을 기대고 머리를 맞대고 책을 보는 일, 책을 읽고 자유스럽게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데 익숙한 아이들은 이미 타인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네 모칸 독서감상문에 가두는 생각이 아닌, 오색빛깔과 제각각 개성 넘치는 생각을 표현하는 아이들이 그곳에 있다. 그러기에 고사리같은 손으로 넘기는 책장 한장 한장이 소중하다. 배꽃향기 가득한 나주 삼영동 부영아파트 배꽃 작은도서관이다.

    ▶ 배꽃도서관은 도서열람대출 서비스 뿐 아니라 매달 1회 이상의 교육문화활동 및 역사기행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4일에는 ‘요절복통호랑이’라는 교육 인형극을 선보여 별다른 행사가 없는 농촌 지역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작은도서관 지원사업으로 새 단장

    지난 2001년 아파트 내 경비실에 작은 서가를 두고 각 동 승강기 옆에 설치한 7개의 작은 도서함이 전부였던 아파트문고에 주민들의 기증 등으로 현재 2만권이 넘는 어마어마한 장서수를 기록하고 있다.

    한 두해만 하다 그칠 것 같았던 아파트 문고 사업이 신 소장과 주민들의 관심과 애정때문이었는지 이윽고 2004년에 문광부의 작은도서관 조성사업에 선정돼 20평 규모의 도서관을 개관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어쩌면 ‘배꽃’도서관은 도심의 도서관을 이용하기 어려운 교통여건, 문화적인 혜택을 받기 힘든 농촌, 또 20평 내외의 젊은 세대로 이루어진 소형임대아파트라는 점이 작은 도서관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최적의 입지 조건이었는지 모른다.

    어 엿한 도서관이 생긴 이후 주민들의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입소문에 지난해 4월 본지(2006년 4월 3일자 ‘세상인터뷰’)가 다녀간 것을 비롯해 매스컴에서 취재도 많이 다녀갔고, 작년에는 책읽는사회 문화재단 등이 지원하는 민영 작은도서관 지원사업에 선정돼 1억여원을 지원받아 55평의 깔끔하고 세련된 도서관으로 새롭게 개관했다.

    현재 보유장서만 2만4천여권이고 빔프로젝터, 스크린 홈씨어터, 시스템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컴퓨터 9대 등 첨단 장비들도 구비됐다.

    신 수용 관장(나주 영산포 부영아파트 관리소장)은 “도심에 있는 큰 도서관이 전신주에 달린 가로등이라면 작은 도서관은 옛날에 쓰던 작은 ‘호롱불’이지요”라며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컴컴한 밤이 와도 호롱불을 밝히면 어머니의 삯바느질도 가능하게 하고, 아이들은 글공부를 할 수 있는 충분한 빛이 되지요”라고 전했다.

    신 관장이 얘기하는 작은 도서관 애찬은 끊이지 않는다. 공공도서관이나 시립도서관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은 모두 작은 도서관은 할 수 있다는 것.

    ▶ 신수용 관장

    나주시 지원으로 역사기행도 실시

    배꽃 도서관 운영도 점점 안정적이 돼가면서 나주시의 차량 및 경비를 지원받아 연 2회 역사기행을 실시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종이접기, 글짓기 등 문화교실, 영화감상 지역민들이 다함께 참여할 수 있는 소규모그룹 취미교실을 통해 지역주민들에게 더 다가가고 있다.

    이뿐 아니라 아파트 관리소장이 도서관을 맡다보니 민원문제 등 주민들의 솔직한 속내도 많이 들을 수 있어 관리소 운영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집이 바로 옆에 있어서 부모님이 회사가 늦게 끝나거나 일이 있을 때 아이들은 이곳에 와서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즐겁게 놀 수 있다.

    신 관장이 작은 도서관을 아끼는 마음만큼이나 이곳을 사랑하는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도 큰 몫을 하고 있다.

    6 개월가량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아파트 주민 유정자씨는 “이곳은 아파트 994세대 주민 모두를 위한, 경계를 두지 않고 열려있는 공간이예요”라며 “자원봉사하는 덕에 덩달아 우리 가족 모두 책을 많이 읽게 됐고 집에서 할 일없이 TV 채널만 돌리면서 시간 낭비하지 않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대는 사람들이 아니다.

    조심스레 쌀을 씻어 밥솥에 안치고, 뜸까지 잘 들여 고소한 밥 냄새 나도록 불도 잘 맞춘다.

    신 관장은 “작은도서관 사업은 나무만 잘 심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며 “물 안주고 가꾸지 않으면 현재 진행되는 작은도서관만들기 사업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고 지적했다.

    새 도서관을 만드는 것보다 1~2천권의 책을 활용하고, 적은 예산이나마 인접지역에 활용도가 높은 도서관 생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작은 도서관이 살아야 지역 교육과 문화가 살아날 수 있다는 말이다.

    지혜창고 겸한 마을 사랑방 역할 ‘톡톡’
    지혜창고 겸한 마을 사랑방 역할 ‘톡톡’

    최근 전남 신안군의 외딴 섬 증도에는 ‘작은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가 참석한 가운데 28일 신안군 증도면 증동리에 ‘고맙습니다 작은 도서관 캠페인’의 첫 도서관이 개관한 것.

    증도면 증동리 165㎡의 부지에 마련된 이 도서관은 도서 3천여 권에 일반 자료코너와 유아 자료코너, 북카페 등이 설치돼 지역주민과 학생 등 2천여 명이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대 통령 부인인 권양숙 여사는 “작은 도서관은 주5일제가 시행되고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면서 소통의 장소, 정보를 공유하는 장소가 될 것이다”며 “기업과 지방정부가 관심을 갖고 주민들이 동참하는 ‘사랑방’으로 마을의 중심 역할을 해내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함께 어울리고 참여할 수 있는 공간 ‘작은 도서관’이 주목받는 이유다.

    한 편 전남 광양시 진상면 청암리에는 책이 좋아 한 평생 책을 모으며 살아온 농부 서재환 씨가 있다. 그는 27년 동안 ‘농부네 텃밭 도서관’ 을 운영 중이며, 경운기를 개조해 만든 이동도서관이 이 지역의 열린 문화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작년 9월부터 마을 주민들과 도서관 이용자들은 텃밭 도서관을 지키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했다.

    최근에는 도서관 바로 앞산에 들어서게 될 ‘소각로 제조 공장’ 건설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서 씨와 그 마을 주민들은 마을의 재산인 ‘텃밭 도서관’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걸어서 10분정도 걸리면 도착할 수 있는 ‘작은도서관’ 찾기, 광주에서는 쉽지 않다.

    작은 도서관 지원 사업 규모가 최하위로 거리마다 도서관을 두고 도서문화 가꾸는데 힘쓰는 여타 도시들에 비해 걸음마 수준이다.

    최근에는 광주시민 정봉남씨를 비롯해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한 엄마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작은 도서관을 제공해야 한다”며 풀뿌리 도서관 운동에 나섰다.

    광주시민센터의 지원을 받아 풍암지구 옛 빅마트 건물 4층에 20평의 공간을 마련하고, 내달 20일 ‘아이숲어린이도서관’을 개관할 예정이다.

    최유진 기자?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