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독서운동, 북시티-3]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위하여, 파주?
출판단지 브랜드 가치 설득하는 데 20년
<편집자주>*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으로 취재 보도됩니다.
1998년, 시카고 한 사서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한 도시 한 책 읽기’운동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군포시 역시 지난 4월 13일 북데이 실천본부를 발족하고 북데이 선포식을 가졌다. 이 운동의 무엇이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본지에서는 각 처의 책 읽기 운동 및 책 마을 모델을 살펴보고 전문가 인터뷰와 좌담회를 통해 군포시 Book City 운동의 미래를 살펴보고자 한다.
<싣는 순서>
1. 북시티, 시공을 초월한 공감대를 향하여?
2. 한 권의 책으로 한 마음 모으는 원주 /Keyword “지역 정체성”?
3.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위하여, 파주 /Keyword “도시 문화 브랜드”
4. 책으로 만드는 기적의 도시 순천 /Keyword “행정부의 역할”
5. 책마을, 고서점 거리 등 아이디어 빛나는 해외 Book City
6. 왜 지금, 책 읽기 운동인가-전문가 인터뷰?
7. 북시티 군포, 책으로 만드는 미래 좌담회
세계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있는 책 마을들. 책을 테마로 한 그래피티와 각종 오브제, 축제, 고서점 거리 등 다양한 유형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대한민국 파주의 ‘출판도시’는 단연 돋보이는 존재다. 출판단지 자체가 하나의 ‘산업단지’로 인정받아 출판과 제본, 유통, 인쇄 등 책을 만드는 모든 관련업종이 한 곳에 모여있기 때문. 여기에 책 만드는 사람들의 주거공간과 상업 공간이 더해지고, 이 모든 공간들이 생태주의와 책 이라는 공통된 분위기의 건물들로 채워짐으로써 ‘출판 단지’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책의 도시’가 되었다.
책의 힘 앞세운 산업단지
출판단지 문화재단의 이호진 주임은 “출판업자들 사이에서 출판도시를 만들자고 결의한지가 20년이 되었다”며 “출판의 산업적, 문화적 역할에 대해 국가를 설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각지에서 유치 경쟁이 벌어지는 반도체나 LCD관련 고부가가치 산업들과 달리 출판업에 있어서는 소위 대기업이라 할 수 있는 ‘절대강자’가 없다. 물질적인 가치로만 환산하자면 인터넷이 등장한 이후로 출판업계의 위기는 끊임없는 화두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도시의 산업단지화가 성공한 이유는 ‘책’이라는 매체의 시공간을 뛰어넘는 파급력과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출판단지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유일한 산업단지가 되었다.
1990년, ‘산업의 문화화, 문화의 산업화’라는 기치로 구성된 출판문화산업단지 사업협동조합은 정부로부터 금융 및 공동사업 자금, 세제 등 각종 지원을 받으며 출판 도시의 지도를 그려나갔다. 초기 일산 신도시 개발계획에 따라 일산에 자리 잡을 예정이었으나 부지 확보를 둘러싸고 토공과 조합 사이에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백지화 되었다. 1995년이 되어서야 김영삼 전 대통령 및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아래 파주 부지가 확보되어 명명식을 갖고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파주, 군사기지에서 문화도시로
파주는 예술마을인 헤이리에 이어 출판단지까지 갖추게 됨으로써 명실공히 문화와 교육의 도시라는 브랜드를 갖게 되었다. 그 전의 파주는 자유로를 달리다 보면 임진강 너머 희미하게 북한땅이 보이는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전방 도시였다. 군사기지로 묶여 개발에 제약이 많았고 성장도 당연히 느려졌다. 크고 융성한 도시는 파주로서는 꿈꾸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파주는 한국을 넘어 세계 각지에서 예술과 출판, 건축의 도시로 인식하고 찾아오는 곳이 되었다. 이 주임은 “영국이나 독일 등 세계 어느 출판 강국을 가더라도 이곳과 같은 출판 산업단지는 없다”며 “전국에 있는 출판사의 채 절반이 안 되는 숫자가 이 땅에 모여있지만 관련 산업의 집적화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단순한 집적화가 아니다. 출판단지는 구성 단계에서부터 일명 ‘위대한 계약서’를 내세웠다.
출판도시의 중심이 되는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는 늪지에 모래를 메워 기존에 활용할 수 없었던 공간을 훌륭하게 변모시켰다. 수풀과 늪이 건물과 어우러져 또 하나의 풍경이 되는 이 건물과 같이 출판도시의 모든 건물들이 ‘생태주의’와 ‘비움’의 일관성을 가지고 지어졌다. 그 통일성 아래 각각의 건물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고 있는데, 단지 내에 위치한 한길사 건물은 옆에서 보면 책을 꽂아 놓은 모습이 된다. 살림 출판사는 책꽂이와 서랍장 느낌의 건축으로 출판 도시의 이미지를 톡톡히 살리고 있다.
‘위대한 계약’은 ‘좋은 책을 만드는 좋은 공간’, 책과 출판업 그리고 출판인들의 삶을 담는 아름다운 그릇을 만들어 내기 위한 기준이 되었다.
책일기 운동, 지역 정체성의 하드웨어
관 주도의 책일기 운동은 행정 실무자의 운동에 대한 이해 부족과 낮은 시민 자발성 등으로 단순한 '책 나눠주기'식으로 변질되기 쉽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국내 1호 기적의 도서관으로 대표되는 순천은 다른 사례다.
2003년 어린이 전용 도서관으로 개관한 '기적의 도서관'의 개관은 2004년 '한 권의 책을 함께 읽는 운동'이 시작되는데 모태가 되어주었다. 순천 시장이 직접 나서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등 행정부의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주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이같은 관의 의지는 '어린이 책 축제'와 '시민 책읽기 주간' 행사 등으로 이어지며 2007년, 순천 전체 시민의 24%인 6만5천여명이 '한 권의 책을 함께 읽는 운동'에 참여하도록 했다.
현재 민간 주도로 북데이 운동을 시작한 군포시 행정부와 연계해 책 읽기 운동을 확산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아 내어 보다 적극적인 캠페인을 펼쳐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해외의 다양한 북시티 선진 사례
군포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책 읽기 운동’에 있어서도 파주는 메리트를 가진다. 다른 도시에는 없는 ‘하드웨어’가 있기 때문. 어린이 책 잔치를 비롯하여 다양한 책 읽기 행사를 펼치는 파주출판도시 문화재단의 모토는 ‘자연스럽게’다. 억지스럽지 않게 파주 시민들의 삶 속에 도시 정체성의 상징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다. 출판도시는 2003년 ‘재단법인 출판도시문화재단’을 구성해 ‘책’을 테마로한 다양한 전시회와 공연 등 문화행사를 열어나가고 있다.?
특히 2003년 시작한 ‘파주 북시티 어린이 책잔캄는 열흘간 오백여 출판사의 참여속에 다양한 책 체험 활동들이 펼쳐진다. 출판단지의 특성상 책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견학하거나 출판사 편집실을 직접 관람할 수 있다.?
2005년부터는 ‘아시아적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동아시아 책의 교류’를 펼쳐 한국은 물론 일본과 중국, 대만 북디자이너들의 교류를 촉진한다. 2006년에는 ‘파주 북시티 국제출판포럼’을 개발, 파주를 아시아 출판의 허브 도시로 만들기 위한 행보를 시작했다. 이 포럼은 다양한 나라의 출판인들이 기획, 편집을 비롯해 북디자인과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출판 전반에 대한 경험을 나누는 실질적인 출판 비즈니스의 장이 되었다.
이 주임은 “손님이 찾지 않는 집은 흉가가 된다”며 “책의 이미지로 어떠한 행사에 대해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도시 자체의 생명력을 북돋우는 하드웨어로서 지역 정체성 형성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