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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7-02
    도서관련 예산

  • [경향신문 200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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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읽는 대한민국] Ⅲ-3. 도서관련 예산


    지난 12일 제주도의 한 호텔. 국립중앙도서관 직원들과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도서관 담당 공무원들이 한데 모였다. ‘도서관 협력망 활성화 워크숍’을 위한 자리. 이날 분임토의는 여느때보다 열띤 분위기로 진행됐다. ‘도서관 자료구입비’ 문제는 특히 뜨거운 사안이었다. 올해부터 제도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는 문화관광부가 도서관 자료구입비 예산을 주물렀다. 각 지자체는 문광부가 내려보낸 돈에다 지자체 예산을 반반씩 보태 시·군·구의 공공도서관 서고를 채울 책을 사들였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정부지원 예산이 지자체로 이양되었다. ‘국고보조금 정비방안’에 따라 문광부의 24개 사업(3백56억원)이 지방으로 아예 넘어가면서 생겨난 결과다. 행정자치부가 문광부를 대신해 ‘분권교부세’란 이름으로 이 예산을 지원하게 된 것이다. 되도록이면 지자체에 권한을 많이 주자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전처럼 ‘자료구입비’라고 항목을 명시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분권교부세는 포괄적 지원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지자체의 재량에 따라 ‘문화관광’ 명목으로만 사용하면 될 뿐 굳이 과거의 규모만큼 책 살 돈을 책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과연 지자체가 표도 나지 않는 도서관 책 구입에 돈을 쓰려 할까. 우려는 현실로 바뀌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지자체 예산에서 도서관 자료구입비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다른 시급한 사업에 우선 순위를 두려는 지자체의 의지에 따라 올해 도서관 자료구입비는 지난해에 비해 모두 줄어들었다.


    경기도는 지난해(1백35억5천만원)보다 10억6천만원을 삭감했고, 대구광역시는 지난해(12억8천만원)에 비해 2억3천만원을 줄였다. 충남의 경우 18억5천만원이던 지난해 예산이 올해는 10억1천만원으로 무려 45%나 감소했다. 이런 상황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지자체가 비슷하다.


    도서관 자료구입비 예산을 아예 한푼도 책정하지 않은 시·군도 있다. 제주도는 지난해 국고지원금을 합쳐 12억3천만원의 예산을 편성했으나 올해는 거의 책정되지 못했다.


    남제주군과 북제주군에는 일정액이 편성됐지만 제주시와 서귀포시에는 전무한 실정이다. 현재 제주도내 공공도서관은 모두 19개. 이중 대부분이 올해 새 책을 사들일 돈을 지원받을 수 없게 된 셈이다.


    제주도청의 공공도서관 담당 고길림씨는 “정부 지원 예산이 지난해보다 조금 적게 내려오다보니 문화·예술 분야 예산을 우선적으로 삭감해 균형을 맞춘 것”이라며 “공공도서관 지원금 같은 예산은 특별히 예외로 둬서 삭감되지 않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김재윤 의원도 지난달 이 문제를 지적하면서 “장서구입비 예산을 지방에 이양할 경우 예산이 삭감, 중단되거나 다른 곳에 쓰여질 가능성이 많아 공공도서관의 부실을 불러온다”고 지적한 바 있다.


    ‘도서관…워크숍’ 참석자들도 이런 문제점에 대부분 공감했다. 이 행사에 참가한 충남도청의 공공도서관 담당 김용연씨는 “분권교부세로 일괄해서 지자체로 내려보내면 도서관 자료구입비는 우선 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면서 “지방분권도 좋지만 이 예산만큼은 정부에서 지원하던 원래 방식대로 복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 워크숍 참가자들 상당수가 이 의견에 동의했다”고 전했다.


    국립중앙도서관측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중앙도서관은 지난달 각 지자체에 ‘도서구입비를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조금 더 많은 수준으로 책정해달라’는 협조공문을 띄웠다. 그러나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사실 이 사안은 지자체장의 굳은 의지가 없으면 성사될 수 없는 일이다.


    이곳 도서관정책과 담당직원 김준씨는 “직선으로 지자체장을 뽑는 현 제도 하에서 쉽게 눈에 띄지도 않는 도서관 지원 사업에 예산을 쏟아부을 지자체장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시는 그래도 좀 나은 편이지만, 군 단위로 가면 지자체장은 도로 등 낙후 시설이나 주민들 생업에 직결되는 문제에 좀더 예산을 편성하려고 하지 도서관사업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곁들였다. 이같은 사정이 내년, 내후년으로 계속 이어진다면 문제는 커진다. 특히 대도시와 지방도시, 도시와 농촌 간의 정보 인프라는 더욱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2011년까지 국민 1인당 공공도서관 장서 수를 1.0권꼴로 맞춘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현재는 국민 1인당 0.85권 수준이다. 미국의 2.73권, 일본의 2.53권, 프랑스의 2.60권에 비하면 많이 떨어진다. 우리나라가 6년후 목표치인 1.0권 수준까지 도달하는 것도 쉬운 일만은 아니다. 지속적인 장서 구입이 뒤따라야만 한다.


    이 문제는 또한 출판산업의 활성화와도 맞물려 있다. 양질의 인문서를출간하면서도 재정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출판사들의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서라도 공공도서관에서 꾸준히 양서를 구입해줘야 한다. 현재 전국 공공도서관 수는 487개이지만 2011년쯤에는 750개 정도로 늘어날 전망이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몇년 안에 공공도서관 인프라는 부족하나마 그럭저럭 규모를 갖추게 되는 셈이다.


    다만 앞서 지적한 대로 이들 도서관에 새 책을 사들일 예산이 없다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사실 지난 4년간 장서 구입을 위한 국고지원은 크게 늘었다. 2000년 56억원에서 2002년 82억원, 2003년, 1백8억원, 2004년 1백34억원으로 4년만에 2배 이상 뛰었다. 아쉽게도 제도가 바뀌면서 올해부터 관련 예산이 마이너스 상태로 돌아서게 된 것이다. 정부가 이 문제에 어떤 묘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전국 공공도서관은 해가 갈수록 퇴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국립중앙도서관의 한 관계자는 “정부 예산지원도 지원이지만 이 문제를 푸는 데는 국민의 도서기증 운동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국민 1명당 책 1권씩 도서관에 기증하는 문화가 정착한다면 현재의 공공도서관 문제는 크게 해소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조장래 기자 jo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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