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향신문 2005-05-19]
지식곳간 비우는
愚범하지 않기를
도서관은 책의 집이다. 책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인류의 문화와 지식이 담긴 그릇이다. 오늘도 많은
책들이 세상에 나오고 있고, 그 책들은 여러 경로로 우리 삶의 현장을 돌아다닌다. 책은 우리에게 정보나 지식은 물론, 소통과 놀이의 즐거움을 줄
뿐 아니라 생생한 지혜를 전해 준다.
사회적으로 책들을 모아 두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도서관이기에, 도서관이 제
역할을 다하려면 우선 책이 많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도서관에 책을 사들이기 위한 자료구입비 확보는 도서관 활성화에 필수적인
조건이다.
그러나 문화관광부의 자료구입비 지원사업이 지방이양 대상으로 되면서 도서관에서 책을 살 돈이 부족해질 우려가
커졌다.
그것은 그냥 어느 한 도서관에서 책을 사지 못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까지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국가의
지식곳간을 비워버리는 행위이다. 특히 지역격차, 정보격차를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도서관이 그 수단인 책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게
된다면 분권과 자율, 민주시민사회 성숙이나 지역 활성화가 가능하지도 않다.
이미 지방이양이 된 사업이라 당장 원상복귀를 하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앙부처 주무부서는 지속적으로 도서관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자료구입 예산 배정 상황을 점검하여 지역주민들을 위한
도서관 서비스의 핵심자원이 부족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 잘 하는 지자체에 대해서는 지원을 아끼지 말고, 책임 수행에 소극적인
지자체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는 지자체에 대해서는 자칫 정보와 지식, 문화의 격차가
심화되지 않도록 긴급하게 개입할 수 있는 준비도 있어야 한다. 앞으로 위임한 권한과 책임을 잘 수행하는지 정부와 지역주민 모두가 지켜보고 조금의
소홀함이라도 있다면 도서관 자료구입비 지방이양 조치는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
이용훈/ 도서관협회
기획부장·도서관문화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