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05-05-27]
‘한 책 운동’ 토론문화 정착에 무게중심을![]() |
이권우 도서평론가 |
“‘한 책 한 도시’ 읽기 운동은 성공할 확률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면 의아해 할 사람들이 많을 듯하다.
당장 시애틀이나 시카고를 예로 들어 반박하려 할 것이다. 제발, 흥분을 가라앉히기를.
필자는 우리의 경우에 국한해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 운동은 책읽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문화적 토대가 튼실하고, 토론문화가 이미 성숙한
사회만이 성공적으로 벌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새로운 세기에도 여전히 ‘책맹’사회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도서관으로
상징되는 문화인프라는 지금껏 취약하고, 관용과 이해의 정신을 익히는 토론문화는 아직 싹을 틔우지 못했다. 그러니 우리가 해내기에는 무척 힘에
부치는 운동이라고 말하는 것이 솔직한 태도가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불가능하니 도전하지 말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문화운동가들의 처지에서 보자면, 열악한 상황을 고쳐나가기 위해서라도 이 운동은 해볼
만하다. 잘만 하면 시민들에게 책읽기의 원형적 즐거움을 체험하게 하고,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해 절실히 요구되는 토론문화를 익히는 교육의 한마당이
될 수도 있다. 각별히 이 운동을 도서관인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면서 얻는 효과도 있다. 운동에 참여한 시민들이 도서관의 필요성과 그것의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세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데, 어찌 나서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되풀이하거니와, 기대되는 성과를 쉽사리 얻을 것이라고
낙관해서는 안된다. 넘어야 할 높은 산은 많고, 건너야 할 깊은 늪은 곳곳에 깔려 있다.
필자는 이 운동이 우리사회에 제대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한 도시나, 한 권의 책보다 토론에 무게중심이 놓여야 한다고 본다. 물론 사람마다
어디에 강조점을 두느냐는 서로 다를 법하다. 책을 읽지 않는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다면, 한권의 책을 돋을새김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책을 통한 특정 이념의 계몽이라는 덫이 놓여 있다. 이 운동을 통해 지역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하나되는 일을 추진하고 싶다면, 한 도시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러나 읽는다고 무조건 공동체 의식이 키워지는 것은 아니다. 한권의 책을 읽는 일을 통해 하나의 도시가 되는 놀라운
경험은, 토론이라는 용광로를 거치지 않고서는 애당초 가능하지 않다.
몇 명이나 이 운동에 참여했느냐는 성과주의적 발상을 버리고, 시민들이 토론의 가치를 확인하는 기회를 만들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러니
대책없는 비관주의자인 나로서는, 이 운동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밖에!
이권우 도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