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대한민국] Ⅳ-2.
전남 순천시 ‘작은 도서관’들
독서문화가 활짝 꽃피고 있는 대표적인 현장은 어디일까. 전문가들은 전남 순천시를 우선 꼽았다. 시민들이 독서문화 운동의 주체로 나서고
있고, 지자체는 그를 효율적으로 뒷받침하는 바람직한 체제라는 분석이다. 그 순천의 독서문화 진원지이자 작지만 크고, 의미 또한 깊은 ‘작은
도서관’들을 찾아봤다.
◇뜻깊은 문화공간=지난 21일 오후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 작은 도서관’. 인근 동네 어린이 20여명이 자원봉사 선생님의 장구 장단에 맞춰
진도 아리랑, 밀양 아리랑 가락을 배우고 있다. 흥이 나자 아예 책상을 두 손으로 두드리며 낭창낭창한 목소리로 제법 판소리의 맛을 낸다. 초가집
도서관의 쪽마루 너머로 넘어가는 아이들의 노래가락. 문화유적(사적 제302호) 낙안읍성의 초가지붕, 돌담, 흐드러진 접시꽃 등과 잘 어울린다.
이 도서관은 읍성내 초가집에 1,400여권의 책으로 마련한 그야말로 작은 도서관이다. 순천시가 시민들의 조사 등을 거쳐 기존 초가집을
리모델링하고 장서를 지원했다. 지난달 4일 문을 열었지만 벌써 하루 평균 20~30여명의 아이들이 찾는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책도 보지만, 학교
숙제도 하고, 어울려 놀기도 한다. 관장 역할을 하는 자원봉사자 봉미연씨(39)는 “중심은 도서관 역할이지만 이곳 아이들에게는 의미가 너무나 큰
문화공간”이라고 전한다.
도서관은 흔히 알고 있는 ‘죽은’ 도서관이 아니라 펄펄 살아있다. 주민들 9명이 요일별로 자원봉사자로 나와 아이들을 뒷바라지하고, 도서관
운영을 한다.
또 전문가들을 초빙,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꾸린다. 독서지도는 물론 짚풀공예, 천연염색, 도예, 판소리 배우기 등 8개 프로그램이
굴러간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도서관 오는 게 너무 좋아요”라고 입을 모을 정도다. 자원봉사자 김영희씨(38)는 “우선 내 아이, 동네 아이,
나아가 한국 어린이의 미래를 생각하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며 “도시와 달리 도시락을 싸 버스 타고 봉사활동하기 위해 오지만 모두가 뿌듯해
한다”고 말한다.
앞서 20일 초저녁 찾은 생목동 벽산아파트 내 ‘벽산 작은 도서관’. 아파트단지 반지하에 마련된 도서관은 30여명 아이들과 주민들로
북적인다. 지난해 7월 개관한 뒤 지금은 하루 평균 70~80여명이 들른다. 주민이기도 한 강애나 관장(42)은 “자원봉사자 7명이 밤
10시까지 운영하는 데 하루 20여명이 책을 빌려간다”고 말한다.
자원봉사자인 정육남씨(49)는 도서관이 생긴 뒤 “아이들이 책을 자연스럽고 재미나게 자주 접하고, 가족단위로도 많이 오며, 주민들간의
대화공간도 된다”고 그 변화상을 설명한다. 이날 도서관내 동화구연에 참여한 명승희양(이수초등 1년)은 “책 보러 친구들과 자주 온다”며
“도서관이 생겨 너무 좋다”고 말한다.
◇작지만 큰 도서관=‘작은 도서관’은 순천시 곳곳에 12개가 있다. 시는 올 하반기에 7개, 내년엔 5개를 더 개관할 예정이다. 기적의
도서관, 중앙관, 연향관 등 ‘거창한’ 시립도서관과는 또다른 의미에서 ‘작은 도서관’들은 시민들의 생활 속에, 편안한 친구로 다가와 있다.
‘작은 도서관’이 전문가들이나 다른 지자체로부터 주목받는 것은 지역 실정에 맞게 만들어지고 운영된다는 것. 흔히 생각하듯 돈이 많이 드는
거창한 도서관이 아니다. 아파트단지의 자투리 공간이나, ‘동신 별빛 작은 도서관’(조례동)처럼 관리사무소나 마을회관, 주민자치센터 등에
만들어진다. 시는 주민들의 도서관 욕구와 운영의지 정도, 수혜주민 숫자, 운영인력 확보 여부, 시설적합 여부 등 꼼꼼한 실태조사를 거쳐 적합
판정이 날 경우 지원에 나선다.
실제 12개 도서관의 총사업비는 2억8천8백여만원. 시비는 1억7천여만원 투입됐다. 평생학습지원과 조수환 계장은 “탁상행정이 아니라 직접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 사업을 추진 한 것이 성공의 열쇠”라며 “시민들의 자발적이고도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 성과가 나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손발 맞는 시민과 지자체=작게 시작한 ‘작은 도서관’이 지금 큰 일을 해내는 것은 무엇보다 지역 주민들이 적극 나서기 때문이다. 장영석
순천시 홍보계장은 “독서문화가 제대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결국 시민들의 의식과 의지가 중요하다고 본다”며 “시는 시민들의 이런 활동에 불쏘시개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전한다. 김영희씨는 “순천이 돋보이는 것은 시청의 시책과 주민들의 손이 딱 마주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순천의 ‘작은 도서관’은 독서지도부터 관리·운영을 주민들이 해낸다. 대부분 학생들이 하교하는 오후부터 늦은 밤까지 운영하고, 하나같이
다양한 문화프로그램들을 만들어내 병행한다.
순천이 ‘독서의 도시’로 상징화되는 것은 근래 시립도서관 이용자와 활용한 책의 숫자가 잘 말해준다. 2003년 중앙관·연향관 이용자는 모두
35만여명, 이들이 이용한 책은 52만여권. 시민 27만여명의 순천시에서 지난해에는 각각 72만여명에 88만여권으로 급증했다.
물론 ‘작은 도서관’의 성과를 벌써 결론짓기는 이르다. 신간 장서의 구입, 체계적인 독서지도, 보다 효율적인 운영 등이 개선할 점으로
지적된다. 조수환 계장은 “주민들의 자체 운영이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지만 시의 지원없이는 쉽지 않은 것도 분명한 현실”이라며 “이제 시 차원에서
독서지도사, 자원봉사자 확보 등의 지원방안을 마련, 하반기부터 시행할 방침”이라고 강조한다.
도재기 기자 jae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