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05-07-15]
지난 8일 오전 서울 마포의 신북초등학교. 막 등교하기 시작한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로 1학년 4반 교실은 시끌시끌했다. 그러다 오전
8시50분쯤 담임인 정승미 교사(37)가 “자, 이제 책읽을 시간이에요”라고 하자 소음은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32명의 아이들은 교실 한쪽에
마련된 책꽂이에서 제각기 책 2권씩을 뽑아 든 뒤 제자리에 앉았다. ‘삼신 할머니와 아이들’ ‘기차 할머니’ ‘거미도 곤충인가요’ 등 갖가지
제목의 책을 펴든 아이들의 표정이 1학년 같지 않게 진지했다. 외부 손님의 출현에 간혹 곁눈을 힐끔거리는 아이도 있었지만 대부분 책장을 넘기는
데 여념이 없었다. 정교사가 올 3월부터 매일 아침 10분간 시행하고 있는 ‘아침독서’ 시간. 이 학교에서는 이 학급을 포함해 모두 3개
교실에서 아침독서를 시범 실시하고 있다. 정교사의 경우 아침독서추진본부 한상수 사무국장의 권유가 계기가 됐다. ‘모두 읽고, 날마다 읽고,
좋아하는 책을 읽고, 그냥 읽기만 한다’는 아침독서의 4가지 원칙을 그대로 살렸다. 이 학급에는 학부모들이 기증한 150권과 아침독서추진본부에서
보내준 40권을 포함해 총 300권가량의 책이 갖춰져 있다.
-학부모·단체등서 책 기증-
‘황소의 심부름’이란 책을 읽었던 이경아양에게 줄거리를 물었더니 “황소랑 사슴이 싸웠는데요…”라며 방금 읽었던 내용을 죽 설명해준다.
학교에서 넉달 동안 30권 정도를 읽었다는 최인후군은 “매일 책을 봐서 정말 좋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책을 읽는 동안 정교사도 함께 책을 본다. 교사 생활 14년째인 그는 “매일 10분씩 함께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변화를
경험한다”고 말했다.
“교사가 어떤 목적을 갖고 꾸준히 하면 그 부분만큼은 아이들이 변하게 된다고 봅니다. 어린이들에게 집에서 책을 읽게 하고 교사들이 학교에서
이를 검사하는 식으로 하면 독서 습관이 붙기 힘들어요. 아침독서를 시행했을 때 처음엔 다소 산만하던 아이들도 곧 적응하는 걸 봤습니다.”
정교사는 아침독서 시간 외에 매주 두차례씩 재량시간을 이용하여 아이들에게 직접 책을 읽어주고 있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다. “의욕이 앞선
나머지 혼자 너무 앞서 나간 측면도 있었다”고 스스로 진단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 아침에 하는 10분 독서가 즐거워야 한다는 거예요. 야단치려 하거나 독서습관을 잡아주는 데 너무 집착한 나머지
교사의 스타일대로 무작정 끌고 가려 해서는 안된다고 느꼈지요.”
정교사는 이달 초 학급 아이들을 상대로 익명의 설문조사를 한 결과 ‘아침독서가 즐겁다’는 반응이 84%(27명)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日초중교 절반이상 참여-
아침독서운동은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책을 보면서 책읽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한 것이다. 이 운동이 확 불붙은 건 아니지만 전국으로 조금씩
번져나가고 있다. 한 예로 대구교육청은 올 3월부터 대구 초·중·고교에서 아침독서운동을 시작하도록 권장해 결실을 얻고 있다. 지난 4월 조사에
따르면 대구교육청 산하 초·중·고교의 96.5%가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학교를 중심으로 일찌감치 아침독서가 자리잡았다. 1988년 교사 2명이 시작한 일본의 아침독서 운동은 이제 일본 전역에 퍼져 있다.
일본 아침독서추진협의회의 이달초 조사에 따르면 현재 일본 초등학교의 54%(1만2천4백93개교), 중등학교의 51%(5,615개교), 고등학교의
26%(1,322개교)가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사회적 후원 활동도 활발하다. NHK와 아사히(朝日)신문 등 언론사를 비롯해 교육기관,
공공도서관, 서점 등이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아침독서운동이 자리잡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들의 적극성이다. 아침에 10분 정도 책읽기하는 일은 교사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요한 책을 확충하는 것은 그 다음에 뒤따르는 일이다. 한상수 아침독서추진본부 사무국장은 “학급문고를 살리는
가장 바람직하고 쉬운 방법은 교육청에서 학급문고용 예산을 책정해서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강원도 교육청에서는 올해 한 학급당
20만원씩 총 9,166개 학급에 18억3천3백여만원의 예산을 책정해 지원하고 있다.
조장래 기자 jo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