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7.
충북 제천 ‘문화체험’ 행사
“옛날 옛날에…” 충북 제천 백운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제천 기적의 도서관 자원봉사 동아리 ‘호랑이 담뱃대’ 회원 이상률 할아버지의 구수한
옛날 이야기를 듣고 있다.
작고 소박하지만 의미와 파급력이 큰 행사가 최근 충북 제천 외곽에서 펼쳐졌다. ‘책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책사회·대표 도정일 경희대
교수)이 정부와 시민단체·기관들의 도움으로 벌인 ‘소외지역 아동들을 위한 문화체험과 그림책 보내기’ 운동. 책사회는 연말까지 전국 소외지역
아이들을 찾아 문화체험의 기회를 주고, 그림책 등을 전달하게 된다. 그 현장을 찾아 봤다.
“옛날, 옛날에. 나귀를 타고 가는 사람과 무거운 짐을 잔뜩 진 사람이 같이 길을 걸어 갔거든….”
지난 14일 충북 제천시 백운면 백운초등학교의 한 교실.
20여명의 어린이들이 교실 창 너머 화사한 원추리 꽃만큼이나 밝은 표정으로 옛날 이야기를 듣는다. 천장에는 선풍기가 쉼없이 돌아가는 가운데
앉은 모습들이 제각각이다. 바닥에 어엿하게 양반자세를 했는가 하면, 아예 책상 위에 편히 걸터앉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 같이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은 온통 옛 이야기를 풀어가는 박찬일 할아버지(68)에게로 쏠려있다. 결국 나귀를 탄 사람이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을 도와주지 않아 나귀가 뀐 방귀에 상처를 입는다는 대목. 아이들은 키득키득대면서도 뭔가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어려움에
처한 친구가 있으면 도와줘야 한다”는 할아버지 말씀에 일제히 “예” 하고 외친다.
-운동장선 흙목걸이도 빚어-
이어 이야기를 시작한 이상률 할아버지(81)는 이야기가 끝날 즈음 갑자기 입에서 틀니를 빼든다. 깜짝 놀라는 아이들. “이를 열심히 잘
닦아야 할아버지처럼 안된다”는 말에 모두 긴장한다. 옆 교실에서는 이영애(73), 김순복(72)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 보따리가 한 무더기
풀렸다.
‘책사회’의 이날 행사에는 백운초등학교와 인근 화당초등학교 1, 2학년 55명이 참가했다. 주최를 맡은 제천 기적의 도서관 최진봉 관장은
“행사 프로그램 안에 ‘할아버지·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를 넣었다”며 “어린이들이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문학적 상상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 독서에 대한 흥미 유발 등 아주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야기 보따리를 푼 할아버지·할머니들은 제천 기적의 도서관에 만들어진 자원봉사 동아리 ‘호랑이 담뱃대’ 회원들이다. 21명이 활동하는
호랑이 담뱃대는 이 지역 초등학교, 유치원 등을 순회하며 옛날 이야기를 들려준다. 박찬일 할아버지는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기본적인 예절교육도
시킨다”며 “금방 스며드는 아이들을 보면 보람이 무척 크다”고 말한다.
이영애 할머니는 “아이들이 우리들로 인해 책을 많이 읽게 되면 그만큼 큰 보람이 어디 있느냐”고 말한다.
도자기 공방인 ‘토화공방’ 김연숙 원장(오른쪽)이 준비해온 흙 재료로 아이들이 백자 목걸이를 만들고 있다.
아이들은 옛날 이야기를 듣기에 앞서 운동장 한쪽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 아래에서 흙으로 목걸이 만들기 작업을 했다.
도자기 공방인 ‘토화공방’을 운영하는 김연숙 원장(41)이 목걸이 만들 재료인 흙 등을 준비해왔다. 작업 주제는 그동안 읽었던 책에서 인상
깊었던 한 장면을 만드는 것. 반민영양(화당초등 1년)은 “책을 많이 읽는 편”이라며 “사람 얼굴과 물고기를 만들다보니 참 재미있다”고 웃는다.
거북선을 만든 오현석군(백운초등 2년)은 “이순신 장군 책을 읽었는 데 거북선이 가장 신기했다”고 말한다.
김원장은 “아이들이 만든 것에 유약을 발라 백자목걸이를 제작한 뒤 학교로 보내줄 것”이라며 “자신들이 한 작업이 백자목걸이가 돼 돌아오면
아이들은 많은 것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림책 받고 아이들 환호성-
이날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 것은 역시 그림책 나눠주기.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도서관 관계자들이 모든 학생들에게 그림책 2권씩을 전달했다.
신진경양(화당초등 2년)은 “학교에서 책을 많이 읽는다”며 “친구들과 돌려 보며 읽을 것”이라고 좋아했다.
최진봉 관장은 “작은 도시, 소외 지역일수록 이런 문화운동의 파급력이 매우 크다”며 “독서의 생활화는 거창한 도서관이나 대규모 이벤트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작지만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활동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도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