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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02/03/10]
[도서관을 늘리고 채우자]4. 아이들이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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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교보문고에서 어린이들이 쪼그리고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작품성을 알 수 없는 베스트셀러 만화책과 신간이 전진배치될 수밖에 없는 서점은 결코 학교도서관의 대안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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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 도서관은 '책창고'
전락일본 국회는 지난해 12월 '어린이의 독서활동 추진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학교도서관 및 도서 정비 예산으로 올해부터 5년간 매년 1백30억엔, 즉 총 6천5백억원이 배정된다.
이 법안이 초당적 단체
'어린이와 청소년의 미래를 생각하는 의원 연맹'에 의해 국회에 상정됐을 때 "독서와 같이 개인적인 문제를 법률로 규정할 수 있느냐"는 반발
여론도 있었다.
그러나 이 단체 핵심의원이자 아동작가인 히다 미요코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독서 문제는 우리나라 미래가 걸린 가장
중요한 현안"이라면서, "미국이나 유럽에 비하면 아직 멀었다. 당분간은 강제적으로라도 일정 수준을 갖춰야 한다"며 밀어붙였다.
그렇게 "형편없다"는 일본의 학교도서관 설치율은 99%, 1인당 장서수는 20권이다.
우리나라는 각각 78.6%,
4.6권(2000년 교육부 통계)이다.
또 1953년에 제정돼 97년 개정된 일본의 '학교도서관법'은 전국 4만여 초.중.고교에
2003년 3월까지 전담사서교사를 반드시 배치하도록 못박았다.
반면 우리나라 전국 1만5백여 개 학교 중 전담사서교사가 있는
학교는 1백50여 개 교에 불과하다.
그뿐인가. 서울 C여고는 이번 학기부터 6백50석 규모의 도서관 열람실을 일반 교실로
바꿨다.
현재 40명 수준인 학급당 인원수를 35명 선으로 줄이라는 정부 방침에 따르기 위해서다.
말그대로 '책
창고' 하나 달랑 남았지만, 그것도 통계상 어엿한 '도서관'이다.
◇표류하고 있는 '학교도서관 진흥법'="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이나 대학도서관 왜곡운행의 가장 근본원인은 학교도서관의 핍폐화에서 출발한다"고 한성대 이용남 교수(지식정보학부)는 잘라 말한다.
'학교도서관 살리기 국민연대'의 상임대표 한상완(연세대.정보조사제공학) 교수는 "입시로 인해 황폐회된 공교육을 살리는 데도 가장
시급하고 현실적인 대안은 학교도서관을 활성화시키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한국교총.전교조.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등 11개
단체로 이뤄진 이 단체의 노력으로 '학교도서관 진흥법'이 지난해 의원입법안으로 국회에 제출됐다.
학교도서관 운영예산의 확보와
전담사서교사의 배치 의무화 등이 골자다. 하지만 국회 파행 등의 원인으로 아직 상임위원회에조차 상정되지 못하고 있다.
또 올
1월에는 교육인적자원부 등 6개 관계부처 공무원들과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학교도서관 활성화 대책 기획단'이 발족, 연구에 들어갔다.
하지만 교육인적자원부 내에 전담과조차 설치돼 있지 못한 형편에선 추진력에 한계가 있다.
◇교사.학부모 협력
절실=현재 그나마 운영이 원활한 도서관들은 대부분 일부 교사들의 '자원봉사'에 의존하고 있다.
이들은 "무엇보다 교장
선생님의 인식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비록 권장사항에 불과할지언정 '학교 운영비의 5%까지 도서관 관련 비용으로 사용'토록
규정하고 있는 '도서관 및 독서 진흥법'을 따라주기만 해도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또 도서관 운영 업무를 교사들에게 분담시켜줄
수 있는 것도 교장의 권한이다.
서울 난우초등학교는 교장과 일선교사, 그리고 학부모들의 협력이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1999년 취임한 안병두 교장은 도서관 신설을 우선 사업으로 정했다.
학부모들로부터 발전기금을 모으는
한편, 동작교육청으로부터 '독서교육선도학교'명목으로 1천만원의 예산을 타냈다. 그렇게 문을 연 도서관은 현재 아이들은 물론 주민들의 문화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공공도서관의 실핏줄 역할을=방학 중엔 대부분 문을 닫는 학교도서관, 어디에 있는지 찾기조차 힘든
공공도서관이 서로 상호보완토록 만드는 일도 현재로선 절실하다.
학교는 공공도서관 견학 프로그램 등을 통해 아이들의 이용을 돕고,
공공도서관은 학교도서관과 대출 및 문화프로그램 등을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인천 지역 교사들로 이뤄진 '학교도서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경우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 겸용 대출증 제작 등을 추진하고 있다.
빈민지역 공부방 활동 경험을 토대로 쓴 동화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작가 김중미씨의 말도 그런 의미에서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대다수의 부모들은 얼마 안 되는 월급을
쪼개 자녀들을 독서학원을 보내고 글쓰기 교육을 시킨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학교나 공공도서관에서 제공해야 하는 문화서비스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그 문화서비스는 노동자의 아이나 농민의 아이, 어민의 아이가 똑같이 제공받아야 한다."
김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