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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5-02
    추천 도서 목록, 꼭 필요할까 - 2025년 기적의도서관 목록위원회를 시작하며

  •  추천 도서 목록, 꼭 필요할까

    - 2025년 기적의도서관 목록위원회를 시작하며


    여기저기에서 수많은 목록이 나옵니다. 공공기관이나 출판단체, 독서단체, 교육기업에서 발간하는 도서 목록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도서관이나 서점에서도 북 큐레이션을 활발히 합니다. 읽어볼 만한 책의 리스트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북 큐레이션은 목록을 만드는 일과 같습니다. 엄선한 소수의 책으로 한정된 공간을 채운다는 점에서, 독립책방은 그 자체로 큐레이션이자 목록이기도 합니다.


    요즘 나오는 목록은 이름도 다양합니다. ‘필독서 목록’과 ‘권장 도서 목록’, ‘추천 도서 목록’은 여전히 많습니다. 최근에는 더 섬세하게 접근하기도 합니다. ‘휴대폰보다 얇고 가벼운 책’, ‘평범하고 친근한 연애 만화’와 같이 목록 제목이 직관적이면서 목록의 타겟을 명확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목록은 책과 사람을 연결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하지만, 요즘 목록은 그 제작방식과 메시지가 덜 권위적이고 목록의 타겟은 더 좁아졌습니다.


    이토록 많은 목록 사이에서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많은 목록을 누가 볼까? 목록을 내면 누구에게 좋을까?’ 목록을 내려는 입장에서는, 특히 어린이책 목록을 내는 일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 어린이에게 또 다른 짐이 되진 않을까 싶어 주저하게 됩니다. 여전히 ‘무조건 책을 많이 읽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누군가에 의해 억지로 책을 읽어야 하는 어린이가 생기진 않을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록을 내는 이유


    2024년에 기적의도서관전국협의회와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은 ‘어린이를 존중하는 책’ 목록을 발표했습니다. 이 목록은 소파 방정환 선생이 1923년 어린이날을 맞아 쓴 ‘어른들에게 쓰는 글’의 한 대목에서 시작했습니다.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치어다보아 주시오.” 여기서 ‘치어다보다’는 ‘바라보다’가 아닌 ‘올려다본다’는 뜻입니다. 어린이를 존중해달라는 뜻입니다. ‘어린이를 존중하는 책’ 목록을 통해 기적의도서관이기에 할 수 있는, 기적의도서관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어린이 존중 정신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2025년을 맞아 새로운 목록을 만들기 위해 기적의도서관 사서들이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 모였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어린이에게 어떤 책을 권할까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공동체가 무너진 사회에서 아이들은 쉴 틈 없이 학습에 내몰리고, 책 읽는 즐거움보다는 게임과 스마트폰이 주는 자극에 길들여진 현상에 대해 참석자 모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사회는 이토록 엄혹한데 어린이에게 너무 세상의 밝은 면만 보여주는 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 사회의 그늘진 모습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목록은 메시지다


    올해 목록 주제는 ‘우리가 보지 못한 곳, 우리가 봐야 할 곳(가안)’으로 정했습니다. 사회의 다른 면을 다룬 책, 어린이책에서 자주 다루진 않지만 어린이에게 필요한 주제, 예컨대 삶과 죽음, 사회적 고립, 소수자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 등에 관한 책을 살펴볼 예정입니다. 2025년 그림책의 해를 맞아 그림책만 선정하기로 했습니다. 작년에도 그랬듯이 한 권 한 권 꼼꼼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지난해 ‘어린이를 존중하는 책’ 목록을 제작할 때 논의 과정을 결과물에 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치열하고 깊이 있게 논의했지만, 결과물을 포스터로만 제작하다 보니 목록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담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목록 제작의 과정을 갈무리하여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결과물을 포스터뿐만 아니라 소책자 형태로 제작할 예정입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은 세상에 또 하나의 책 리스트를 내는 일이 아닙니다. 더 많은 책을 읽히기 위함도 아닙니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고자 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록은 메시지입니다. 작년에는 어린이 존중의 뜻을 알리고자 했고, 올해는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말하고자 합니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메시지를 발신하는 일 또한 기적의도서관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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