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도서관 장서에 대한 외압을 멈춰라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필수불가결한 기본권이다. 우리는 의사표현을 통해 인간 존엄을 실현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즉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언론과 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을 금지하고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이런 취지로 바람직한독서문화를위한시민연대에서는 ‘독서의 달’ 첫 번째 주인 9월 1일부터 7일까지 ‘금서읽기주간’(Banned Books Week)을 실시하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표현의 자유와 이를 뒷받침하는 독서 및 도서관의 자유, 출판의 자유를 지키자는 취지로 매년 진행한다.
최근 편향된 역사교육을 해온 ‘리박스쿨’ 관련 도서에 대한 폐기 요구가 거세다. 전국에서 해당 도서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일부 교육청은 소속 학교와 공공도서관에서 해당 도서를 폐기할 것을 지시하였다. 전국 각지의 도서관에서 해당 도서를 폐기하거나 열람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해당 도서가 편향된 역사관을 담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도서 납품 과정에서 부당한 개입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특정 단체가 공교육 현장의 역사 교육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려 했는지, 도서관 수서 과정에서 부적절한 개입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진상규명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도서관 장서는 상위기관이나 외압에 의해 폐기할 수 없다. 도서관은 모든 시민이 다양한 지식과 사상을 접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민주적 공간이다. 특정 도서를 배제하거나 폐기하는 행위는 도서관의 본질적 역할을 훼손하며, 정보접근권을 침해한다. 도서관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가치다.
우리는 이미 몇 해 전, 교육부가 나다움어린이책 사업에서 성평등과 다양성을 주제로 한 책들을 ‘논란’이라는 이름으로 현장에서 철수시킨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또한 2023년부터 성교육·성평등 도서에 대한 일부 단체의 공격도 계속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앞의 사건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특정 집단의 압력과 편견에 따라 책을 없애는 행위는 민주사회가 지켜야 할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는 검열 행위다.
도서관 자료 선정은 도서관 장서개발정책과 사서의 전문적 판단에 기초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압력이나 사회적 논란이 수서와 장서 관리에 직접적으로 개입한다면, 도서관은 다양성, 평등성, 포용성의 가치를 발휘할 수 없고, 더 이상 지식 정보를 수집하고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독립적인 기관일 수 없다. 성교육·성평등 도서 폐기와 리박스쿨 도서 폐기 논란은 모두 도서관 수서의 독립성을 침해한 대표적 사례다.
우리 사회는 군사독재 시대에 가혹한 도서검열을 경험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도서관 현장에서는 아직도 논란을 피하기 위하여 문제가 될 자료를 애초에 들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자기검열을 하는 문화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기검열 문화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는 도서관 장서의 다양성을 훼손할 뿐 아니라 이용자의 정보접근권 침해로 이어지며, 도서관 본연의 기능을 저해하고 민주사회의 기반을 흔드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도서관이 특정 집단의 이해에 따라 좌우되는 공간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자유롭게 다양한 자료를 접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적 공간임을 다시금 확인한다. 도서관의 자유와 수서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은 단순히 사서의 권리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 모두의 권리를 지키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도서관 장서에 대한 외압을 즉각 중단하라.
2. 도서관 수서와 장서 관리의 독립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라.
3. 도서관 자료에 대한 논란은 폐기가 아니라 비판적 토론과 주석, 보완 자료 제공을 통해 해결하라.
4. 도서관이 다양한 삶의 가치와 이념을 만나 스스로 비판력을 키워갈 수 있는 장이 되도록 보장하라.
5. 학교도서관이 다양성, 평등성, 포용성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도록 사서교사를 100% 배치하라.
2025. 9. 23.
바람직한독서문화를위한시민연대
(사)어린이와 작은도서관협회, (사)한국작은도서관협회, 어린이책시민연대,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사서분과, 전국사서교사노동조합, 책읽는사회문화재단,
한국도서관협회, 한국출판인회의, 한국학교도서관협의회, 한국학교사서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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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집_도서 폐기 사태와 관련한 독서문화시민연대의 입장 표명.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