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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16
    [몰개월의 새] ‘죽은 고전’이기를 단호히 거절하다

  • 경향신문은 '책 읽는 경향'을 통해 매일 아침 독자들에게 책 한 권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4년째 쉬지 않고 내보내고 있습니다. 일간지 1면에 날마다 서평 형태의 칼럼을 싣는다는 것은 신문사로선 매우 이례적인 기획일 뿐더러 사회적으로도 무척 의미 있는 일입니다. 7월과 8월 두 달 동안 '책읽는사회'가 '책 읽는 경향'을 맡아 책 소갯글을 주선하기로 하였습니다.



    몰개월의 새 | 황석영 · 창비


    ‘죽은 고전’이기를 단호히 거절하다
    ~손경목 | 문학평론가~
    여자들이 무엇인가를 차 속으로 계속해서 던지고 있었다. 그것들은 무수하게 날아왔다. 몰개월 가로는 금방 지나갔다. 군가소리는 여전했다. 나는 승선해서 손수건에 싼 것을 풀어보았다. 플라스틱으로 조잡하게 만든 오뚜기 한쌍이었다.

    그 무렵에는 아직 어렸던 모양이라, 나는 그것을 남지나해 속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작전에 나가서 비로소 인생에는 유치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역에서 두 연인들이 헤어지는 장면을 내가 깊은 연민을 가지고 소중히 간직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자는 우리들 모두를 제 것으로 간직한 것이다. 몰개월 여자들이 달마다 연출하던 이별의 연극은, 살아가는 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아는 자들의 자기표현임을 내가 눈치챈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몰개월을 거쳐 먼 나라의 전장에서 죽어간 모든 병사들이 알고 있었던 일이다.
    (191~192쪽)

    바다가 햇살, 바람과 협력하여 얻는 생산물이 소금이라면 문학은 인간의 마음이 세상과 부딪쳐 빚어내는 앙금이랄 수 있다. 그 앙금이 우리 체험과 기억의 한갓된 잔여물이 아니라 순금의 결정체로 빛나는 경우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베트남 전쟁터로 나가는 병사를 등장시킨 <몰개월의 새>를 필두로 <한씨연대기> <돼지꿈> <낙타누깔> 같은 황석영의 중단편소설들은 이미 한국 문학의 고전이 되어 있지만 지금 읽어도 생생한 감동을 준다는 점에서 ‘죽은 고전’이기를 단호히 거절한다. 물기를 증발시키고 남은 소금처럼 군더더기 없이 날렵한 이 소설들은 허황한 잡담으로 가득찬 세상 속에서 여전히 치열하고, 슬프고, 아름답다.


    손경목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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